외로워서 여기를 찾아왔어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22.11.18
조회수
531

외로워서 여기를 찾아왔어요

 

대전 행복교육실천운동

대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사 단체로 ‘행복교육실천운동(이하 ’행복교실‘)이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11월 14일(월) 정기 예배 때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날 밤 집회 때, 성령님께서 강력히 임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울보선생의 영훈고 이야기 3> 두 권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책을 필요한 선생님에게 선물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수 년 전 ’대전기독교사대회‘를 주관하고 나를 강사로 초청했던 박선생님이 ’행복교실‘의 대표로 있어 이 기도회가 더욱 신뢰가 갔다. 또한 전도사이기도 한 박선생님은, 이 날이 본인의 설교 차례인데. 한 주 전 만났을 때 나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며, 말씀을 전해주길 원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너무 예쁜 선생님들

일찍 도착한 선생님들은 기도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수막을 들고 테이블을 옮기고, 간식을 챙기는 선생님들. 섬기는 선생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님, 간단하게라도 식사하시죠.”

라고 말하는 박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식탁 테이블을 보니, 투명 유리에 물이 담겨 있고, 그 안에는 은행잎, 단풍잎 등의 이파리들이 있었다. 유리병 주위에도 예쁜 돌들과 낙엽이 예쁜 그림처럼 놓여져 있었다. 그것을 미소 띤 얼굴로 보고 있는 나에게 박선생님은 말했다.

“선생님, 너무 예쁘죠? 우리 행복교실 부대표 선생님 작품입니다.”

“네네, 너무 좋습니다.”

 

홀로 찾아 온 선생님

옆 자리에 한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박선생님은 그분을 나에게 소개했다.

“아! 선생님, 이분은 오늘 처음 오신 선생님이세요. 세종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 선생님, 처음 오셨어요? 잘 오셨어요. 우리 식사 같이 해요. 이쪽으로 오세요.”

선생님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 자리로 옯겨 앉았다.

나는 웃으며 학교와 이름, 오게 된 경위 등을 물으며 친근감있게 말을 건넸다. 그 선생님은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임00 선생님이었다.

서울에서 기간제로 교사를 하다가 세종의 한 고등학교에 정교사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의 암 투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담임 반 학생이 찾아왔기에, 본인이 기도해 준 것을 계기로, 흔들리는 믿음을 다잡고 기도하는 교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인터넷을 살펴보고 스스로 행복교실을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나리라

그 선생님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렇게 혼자 기도 모임에 찾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서 오거나, 또 동행이 있어서 함께 오거나 하는데, 이렇게 혼자라도 용기를 주시어 찾아오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이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 것 같다.’

불현듯, 지난 달 서울에서 있었던 ‘기독교사모임’ 기도회 때, 한 여선생님이 경남 양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던 생각이 났다.

그 선생님은 양산에서 홀로 기독교사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함께 할 동역자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만날 수가 없어, 온라인상에 올려져 있는 ‘기독교사모임’ 기도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서울까지 왔었던 것이다.

두 시간여의 뜨거운 기도회를 마치고 저녁 식사도 뒤로 한 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양산으로 내려가신 선생님이 떠오른 것이다. 그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이 말씀이 생각났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는 예배

저녁 7시. 선생님들의 찬양으로 예배는 시작되었다.

찬양 인도, 악기 연주 등 모든 것을 선생님들이 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마음껏 찬양하는 약 50명 가량의 선생님들. 그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마음은 감격으로 넘치고 있었다.

찬양이 계속될수록 성령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고, 이 모임을 주관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손을 들고 마음껏 찬양을 올려드렸다.

찬양 후 대표로 기도를 하는 ‘행복교실’의 전 대표 선생님의 기도는 매우 간절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 학교를 위한 기도, 현실은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달려가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올려드렸다.

나는 그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며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와 감동과 감격이에요

이윽고 내 순서가 되어 앞으로 나갔을 때, 나는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자맥질같은 울음소리가 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밀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집회를 접했었지만, 이런 상황은 참 드물었다.

나는 눈물을 참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들, 오늘은 참~~, 감사, 감동, 감격입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선생님들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마음을 주셨던 것같다.

우리의 제자들을 위한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학교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 그래서 기도의 동역자들, 기독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과 그분들에게는 기독교사로 평생 살아온 선배인 내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사실. 그 눈물과 자신들의 눈물의 의미가 같다는 것. 하나님의 마음이었고 소망이었다. 은혜였다.

 

기독교사를 알게 되었어요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전했다.

비신앙인에서 기독교사로의 부르심, 회심, 그리고 주님을 만난 후, 25년간을 한시도 쉼없이 기도하는 교사로 살아온 이야기, 영훈학교의 기독교학교화, 그리고 금년에 정년을 3년 앞두고 학교마다 남겨진 그루터기 같은 기도하는 학생들을 ‘학교 교회’로 세우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현재 [더작은재단]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현재 ‘스쿨처치임팩트’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나누었다.

“선생님들, 저는 기독교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국어만 좋아하고, 아이들을 제 나름대로 사랑하는, 그리고 술을 잘 먹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희 학급에 보내주신 두 명의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픈 학생을 위해 기도하는 기독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년의 기도 끝에 그 아이를 살려주시고, 가정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만날 때 초기에, 제가 양다리 신앙인으로 루게릭병 제자들을 만났었을 때, 장로님이신 한 선생님의 인도함에 따라 ‘한국교육자선교회’에 갔었습니다. 정기적인 월례예배였던 것 같은데, 그곳에는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른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30대 후반이었어요. 예배 후에 제 소개를 해주시고, 이어서 기도 제목을 물어보시더라구요. 저는 그때 루게릭병 제자들로 인해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응급실로 뛰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의 회복이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어요. 구원이 아이들에게 임하고, 가정에도 임하고, 사랑하는 제자들 병도 낫게 해달라고요~~.”

 

저도 여러분을 격려해요

25년 전, 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는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또렷이 생각이 난다. 그 때 상황은 이러했다.

내가 이렇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자들을 위해 선생님들께 기도 요청을 했을 때였다. 사회를 보시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최선생님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때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선생님 몇 분이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내 소리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나에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분들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셨다. 절대 지치지 않도록,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기를 바라며 말이다.

나는 이 오래 전의 이야기를 25년이 흐른 날, ‘행복교실’ 선생님들과 나누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들, 그런데요~. 어느덧 제가요. 저의 루게릭병 제자들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 선생님들 나이만큼 되었어요~. 저는 회심한 후 지금까지 20여 년을 기독교사로 살며 달려왔는데, 이제는 사랑하는 우리 기도하는 후배 선생님들 섬기라고,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라고 하나님 그러셔서 저 여기 왔구요. 그래서 앞으로 밥 사드리려구요. 힘드신 선생님들, 어디 계시든지 찾아가 기도해드리고 격려해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제자들, 다음세대 아이들 힘내어 잘 키우도록요. 그게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인생 그렇게 살라는 사명이에요.”

 

더더더 작아지는 재단예요

내 얘기를 듣는 선생님들의 눈시울이 가을 단풍처럼 붉어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 감동이었으리라.

나는 말씀 중에, [더작은재단]을 설명하며, 선생님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학교에서 제자들을 교회처럼 세워가는 사역에 대해 안내했다. 그리고 [더작은재단[에서 섬기고 있는, ‘오픈아이즈 스쿨’과 ‘뮤지컬’, ‘무빙워크숍’, 그리고 ‘스쿨처치임팩트’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

“선생님들, 그래서 [더작은재단]은 ‘더더더 작아지는 재단’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분에게 부어주신 믿음, 그리고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즉 기독 학생들을 통해 학교를 교회처럼 만드는 사역에 쓰도록 마음 주셨기에, 재단 대표님이 순종하신 거거든요~. 그리고 20명 가량의 사역자들이 함께 뛰고 있는거구요. 저희 재단은 다름 아닌, ‘복음’을 전하는 재단입니다.”

선생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감동과 공감의 표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말씀을 마치고 이어서 기도회를 인도했다. 계속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사와 감동, 감격을 주체하기가 힘들었지만 성령님께서는 그것마저도 아름답게 사용하고 계셨다.

나는 ‘사명이 생명보다 중요하고,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우리 모두 목숨을 걸고 주어진 ‘기독교사의 사명’을 다하자고 외치며 소리높여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가운데 나는 무릎을 꿇었다. 박선생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나와 선생님들의 기도 소리는 더욱 커졌다. 나는 기도를 하다가 마이크를 넘겼다. 박선생님이 기도회를 이어갔다. 박선생님은 그 뜨거운 열정의 목소리로 말씀을 붙잡고 기도회를 인도하였고, 또 몇 가지의 학교와 관련된 기도 제목으로 뜨겁게 기도회를 인도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에요

은혜 가운데 예배를 드린 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박선생님은 오늘 처음 오신 임선생님을 앞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자기 소개겸 오게 된 경위를 물었다. 임선생님이 앞으로 나왔다. 임선생님의 눈시울도 붉어진 상태였다.

“저는 세종에 있는 B고등학교 사회 교사입니다. 주로 서울에서 지내다가 세종의 학교에 정교사로 발령이 되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퇴근하면 아는 사람도 없고, 외로웠어요. 그리고 얼마 전 저희 학급의 아이가 와서 자기가 힘들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왜 그런가 했더니, 아빠, 엄마 모두 항암 중이라는 거예요. 제가 얘기를 듣고, 내가 교회 다니고 있는데 기도해 줄게 했어요. 그리고 그때까지 제 고갈된 믿음을 알게 되었고, 믿음을 회복해야겠다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어요. 그랬더니 이런 모임이 있어서, 결심하고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때였다. 모든 선생님들의 환호와 환영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나는 가지고 간 두 권의 책 중 한 권을 임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이 모임에 일 년 전부터 나오신 선생님께도 또 한 권의 책을 선물로 드렸다.

 

사랑하고 축복해요

모든 예배를 마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도 함께 찍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스쿨처치를 하고자 하는 대전의 P교회 S목사님이 어린 자녀들과 사모님도 함께 하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 분의 구면인 선생님들, 후배 선생님들과 기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얼굴에서 빛이 나요.”

“선생님, 선생님의 삶은 항상 현재형이네요.”

“선생님, 더작은재단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 자주 오셔야겠어요. 너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선배님 감사 감동 감격이었어요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기차 시간이 임박했다.

J선생님께서 나를 서대전역에 데려다주었다. 그때가 기차 출발 4분 전이었다. 감사히 서울에 올라와 나는 J선생님께 이렇게 톡을 보냈다.

“샘, 감사해요. 기차 잘 탔어요. 베스트드레서, 아니 베스트드라이버였습니다~.”

이내 J선생님으로부터 이렇게 답장이 왔다.

“!!!!!!! 선배님. 안 그래도 걱정되어서 기차 잘 타셨는지~~ 💞 오늘 저야말로 급한 마음에 너무 정신없이 모셔드려서 마음이 쓰였어요 😂😂 다음에 또 모시게 된다면 평안히 모시겠습니다 🚕😎 오늘 정말 감동 감사 감격이었습니다..! 목사님 심령에 부어진 하나님의 불이 제 가슴에도 지펴지길 사모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조만간 또 와주세요. 집에 조심히 들어가셔요. 뀨.”

J선생님의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참 좋았다. 친근감을 넘어선 싱그러움까지도 느꼈다. J선생님과 같은 후배 교사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선배 교사’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의 결단을 하게 되었다.

아래는 서울로 올라오는 중에 임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내용이다.

“선생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선생님들에게 그러했겠지만 특별히 저를 위해 보내주신 오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교사로서 한 개인으로서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한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허나 목사님을 통해 제 삶이 변화 받을 단서를 찾은 것 같은 오늘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감히 앞으로도 종종 소통하며 고견을 여쭙기 청해봅니다. 그럼 돌아가는 발걸음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임선생님을 부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이 땅의 또 한 명의 기독교사를 부르시고, 기독학생을 부르시고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날이었다.

또한 [행복교육실천운동]의 모든 선생님들을 통해 아름다운 복음의 역사가 학교 현장에 흘러 넘칠 것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더작은재단]을 통하여 이분들을 세워가시고, 격려하게 하시고, 이 땅의 학교에 다음세대 아이들이 ‘교회’로 서가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교회다”

 

22. 11. 14.

더작은재단 스쿨처치임팩트에서

울보선생 최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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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전국 <기독교사 기도회> 

1. 일시 : 2022년 11월 26일(토) 오후 3시(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전방 325미터 6분 거리입니다.)

2. 장소 : 오픈 아이즈 지하1층 워크숍 룸<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1-4(가회동)>

3. 기도회 장소 세부 안내

오픈 아이즈 지하1층 워크숍룸은 최관하 선생님이 ‘더작은재단 스쿨처치임팩트 대표’로 사역을 하시는 '더작은재단' 소속 건물이며, 이 기도회는 ‘스쿨처치임팩트’에서 후원합니다.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325미터 전방에 위치. ^^ 주차장이 협소하오니,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 바랍니다.

4. 기도회 성격 : 본 기도회는 기도하기를 원하는 모든 기독교사들이 마음껏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초교파적으로 선교 단체 무관하게 기독선생님들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지만, 정식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단은 본 기도회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이단 정보는 탁지원 소장님의 '현대종교'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습니다.

http://hdjongkyo.co.kr/news/index.html?section=42264&category=42265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기독교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놓을 때 삶의 모든 것이 질서가 잡힐 것입니다.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2022. 11.

울보선생 최관하(010-6264-5097), 

교사 김도성(010-4357-5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