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교육자 선교회 4월 예배
작성자
안*영
작성일
11.04.26
조회수
1288

4월 25일 예배는 예수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다음날이어서 더 감격적이었습니다.
늘 말씀을 전해주시던 노영상 목사님께서 노회 일로 출장 중이신 가운데 용마초 한성수 교장 선생님의 간증 예배로 드려졌는데 예수님과 동행 했던 세월을 찬양으로 증거 했으며 독학으로 6개월 동안 습득한 플롯 연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의 혼란스런 때에 일가 친척 모두 피난을 갔으나 만삭의 몸으로 남겨지신 어머님이 마당에서 홀로 여섯 번째 자녀인 자신을 출산 하시고 어렵게 몸을 추스리셨으며 군에서 부상 당한 형 때문에 국군 장교 가족이라는 이유로 빨치산 공산군의 표적이 되어 쫒기게 되었답니다.
차를 타려고 하는데 어머니 품에 안겨 숨도 쉬지 않는 것을 보고 죽은 아이를 태우면 재수가 없으니 공동묘지로 가는 도로에 땅을 파고 묻으라고 해서 묻을 장소까지 정해 놓았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손가락을 아이의 입에 깊숙이 넣어 숨통을 트이게 해서 살아났답니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새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사남매를 낳으셔서 10남매가 되셨답니다.
병약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린 시절 학교생활에서도 왕따를 당해야 했고 살갑게 챙겨주던 누나도 죽고 늘 우울한 삶이었는데 우연히 스스로 걸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벽에 걸린 그림 속 인자한 모습으로 내려다보시는 예수님의 따스한 눈빛이 좋아서 계속 출석을 했답니다.
그래도 늘 몸은 병으로 아팠고 어머니와 누나를 만날 것 같은 생각에 죽음을 동경했으며 우울증으로 회색빛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학교 졸업 후 섬마을에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그 곳 청년들끼리 뜨겁게 예배를 드리는 환경에서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배우게 되었고 신앙생활에 눈이 떠졌습니다.
어머니와 누나, 사촌, 이복동생 등 삶의 의미가 되었던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 되었을 때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 주셨답니다.
군에 가서는 생각지도 못한 군종 사병이 되어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경험 하지 못했던 기쁨을 맛보게 되었으며 늘 예수님을 찬양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1500세대가 빈민촌인 편부, 편모 어려운 지역으로 발령 나서 그 곳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가정에 희망을 주고 몸을 아끼지 않으며 봉사를 했을 때 쏟아 부은 그 이상으로 많은 영적인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으며 늘 예수님이 함께 동행 하신다는 강한 확신 속에 살고 있고 지금도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용마초등학교에 아침에 7시면 출근하고 교장실에서 플룻으로 예배 겸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모든 생활이 주께 찬양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학교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주는 행복 베푸는 기쁨’을 체험 하도록 기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구주를 생각만 해도
채워 주소서
오 놀라운 구세주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평화의 기도
My Heart Will Go On (영화 타이타닉 중에서)
그대 먼 곳에

멋진 곡이 있으면 가사를 ‘주께 드리는 찬양의 가사’로 바꾸어 부릅니다.
주님을 끝없이 사랑하는 찬양의 마음이 아름다운 플룻 선율에 담겨져 듣는 이들의 마음을 감동케 했습니다.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 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닮아 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 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 간증 들을 때 메모한 종이를 어디 두었는지 잃어버려서 정확한 지명과 더 자세한 내용과 감동을 다 적지 못했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5월에 더 큰 은혜와 감사함으로 만나요. ^ ^*~ 사랑합니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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