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린쿠유 지하도시
작성자
김*영
작성일
09.01.05
조회수
1791

데린쿠유 지하 도시  2009. 1. 5 김규영

지난 8일동안 터키 서부지방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지난 2005년 이스라엘과 터키 성지 순례를 하고나니 성경이 정말 실제처럼 믿어졌기 때문에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갔었습니다.

여러군데를 다니면서 좋은 경치도 보고, 역사 유적도 보고, 가이드로부터 터키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유럽 역사에 대해서 한줄기로 꿰어 듣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역사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데린쿠유 지하 도시였습니다. 그 많은 박해를 피해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가지 300년 동안이나 대를 이어가며 살았고, 지하에 살다보니 눈도 나빠지고 허리고 꼬부라지고 마치 동물 처럼 기어다니며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던 그들이 자기들이 죽인 예수를 위해 그토록 고생하며 살았다니.......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그건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즉 부활하신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그토록 비참하게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이 몸은 비록 힘들게 살았지만 영혼은 한없이 기뻤을 거라고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주를 위해 핍박받는 자에게는 하늘의 상이 크다고 했는데 죽어서만 상 받는 게 아니라 살아서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마음의 평강과 영혼의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데린쿠유 마을 주변에만 30여 개의 지하 도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카파도키아 지역 전체에 150~200 개의 크고 작은 지하 도시가 있다고 하는데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그 안에는 집단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터키의 카파도키아 지방에 있습니다. 



데린쿠유 마을 주변에만 30여 개의 지하 도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카파도키아 지역 전체에 150~200 개의 크고 작은 지하 도시가 있다. 또한 지하 도시 입구에는 돌로 만든 높이 1~1.5m, 두께 30~50cm 규모의 맷돌 모양의 문이 있는데 무게가 200~300kg으로 안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으며, 문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서 바깥 쪽을 감시하거나 이 구멍을 통하여 적에게 활이나 창으로 공격을 하였다.

지하 도시 내의 방과 방 사이에는 직경 10~15cm 정도의 구멍으로 연결하여 여기를 통하여 통화를 하였다. 따라서 의사 전달을 위해서 긴 통로를 다니지 않을 수 있었으며 비상시 쉽고도 신속하게 연락이 가능하였다. 환기를 위해서는 외부로 연결되는 환기 갱을 만들었다.

영화 쿼바디스로 유명해진 로마의 카타콤은 기독교 유적으로 잘 보존되고 널리 알려져 있고 영생을 소망하는 죽은 자들의 흔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그 많은 박해를 피해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이지만 지금은 훼손이 많이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데린쿠유 (Derinkuyu)



카이막리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데린쿠유의 지하 동굴 도시에는 이천명이 살 수 있으며 1968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수 많은 환기 갱, 우물, 물 탱크 및 출입 갱도 등이 광대한 망을 이루고 있다. 지하 도시 내에는 부엌, 거실, 창고, 회의실, 공동묘지, 교회, 연결 회랑 등이 다수 있으며 모든 필요한 시설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도시이다. 지하 도시를 처음 건설한 사람들은 히타이트 인이라고 여겨진다. 그 후 이 지하 도시는 기독교인들의 피신처로 이용되어 왔다.

아직도 지하 도시 전체에 대한 규모는 모르는 상태이며 현재 공개되는 부분은 지하 8층 까지로 55m 깊이에 1500 m2 이다.

지금은 단지 지하 8층까지만 발굴되었으나 여러 층이 더 있고 주변의 다른 지하 도시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일 아래층은 우물인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이곳이 '데린쿠유 (깊은 우물)' 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데린쿠유 마을은 1962년까지 이 우물들을 실질적인 수원으로 이용해왔으며 아직 그 의존도는 상당히 크다고 한다.

지하 1층은 축사와 가축들을 위한 물과 사료 창고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축사 옆으로는 포도주 양조장이 있는데 위쪽 구멍을 통해 포도를 떨어뜨려 포도즙을 내서 아래쪽으로 구멍을 통해 흘러 내리게 되어있다.

지하 1층에는 신학 교실과 학생들의 공부방도 있다. 지하 2층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파서 주거지로 그 아래 층들은 피난처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층에는 부엌, 창고, 침실, 포도즙 틀, 화장실 등이 있다. 지하 3층은 주로 창고이며 우물과 연결된 통로가 있는 곳도 있다. 지하 4층에는 출구와 연결되기도 하며 주거 공간이나 창고가 있기도 하다.

길고 좁으며 높은 연결 터널이 구불구불하게 지하 3층에서 5층까지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간에 돌로 된 문이 있다. 지하 5층에는 환기 갱이 있어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 5층과 6층 사이 통로 곁에는 거주를 위한 방들이 있다. 통로에는 구멍을 파서 촛불이나 기름 등잔을 올려 놓아 조명을 한다. 지하 7층에는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십자가 모양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폭이 10 m, 길이가 25 m이며 높이는 3.5 m에 이르며 교회로 사용되었다. 지하 8층에는 작은 방들과 환기 갱들이 있다.

한편, 지하 도시들을 연결하여 주는 터널이 있는데 그 중에는 길이가 9 k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서너 명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것도 있다. 데린쿠유 지하 도시에서 발굴된 것은 약 4km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