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쓴 수업 평가
작성자
최*하
작성일
09.07.02
조회수
1414

아이들이 쓴 수업 평가

서로 통하는 사이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처음에 교사를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아이들에게 잘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것은 비단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무조건 대학에 많이 보내야만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에 대한 폭넓은 ‘앎’을 알려주고 싶었단 지식, 곧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하고 잘 따라주었다. 그러나 극히 내성적이었던 내 성격과 기질의 특성으로 내 마음에는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사람끼리 무엇을 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관계 형성이다. 그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어떠한 일을 진행하려 해도 부드럽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나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자인한다. 그러나 그 노력도 아이들의 상황과 생각을 외면한 채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 아이들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 그것이 필요했다. 나는 교사 생활을 하는 내내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 나름대로 노력하고자 했다.

수업 평가 합시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내가 아이들과 호흡이 잘 맞는지 하는 것이었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그 음식을 받치고 있는 그릇과 전달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결국 좋은 내용은 잘 전달하는 사람에 의해 그 진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임 교사가 된 후 한 달 쯤 지날 무렵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나의 수업에 대한 소감이나 평가를 아이들에게 써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어떨까요? 즉, 선생님에 대한 소감이나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겁니다.”
아이들은 나의 이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수업 평가라니...
어떤 선생님도 그런 것을 말하지도 또 요구하지도 않았던 말이라고 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여러분, 저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잘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잖아요. 왜냐하면 제가 아무리 혼자 잘 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여러분이 그게 아니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써도 좋습니다. 그건 나에게 좋은 자료가 되거든요. 좋은 것은 그대로 하면 되고 안 좋은 것은 바꾸어가고요... 제가 하루 이틀 교사 생활 할 게 아니니까... 이해됐죠?”

좋았다. 괜찮았다. 재밌었다.
이렇게 시작한 수업 평가는 20년간 지속되었다.
금년 역시 1학기가 끝날 때 그 소감을 받았다.
짤막한 소감부터 날카로운 지적까지 나는 소중한 아이들의 마음을 다 끌어안으려 애를 쓰며 아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아이들의 소감은 대체로 이러했다.
“좋았다. 괜찮았다. 재밌었다.”(2학년, 남)
“수업이 딱딱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끔 재미있는 추억 이야기를 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발표 수업이 재미있었다.(2학년, 남)
“한 학기 문학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허무 개그도 많이 하시고 아이들에게 잘해주시는 선생님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또 문학이 재미있어지고 많은 작품을 알게 되어서 보람찼어요. 앞으로 2학기 때도 지금처럼 해주시면 좋겠어요. 착한 문학 선생님.”(2학년, 남)
“요점만 딱 지목해서 필기해주시고 말해주셔서 좋았어요. 그리고 딴 남자선생님들처럼 위협적(?)이지 않고 그러셔서 정말 맘 편하게 수업 들을 수 있었어요."(2학년, 여)
"나는 1학년 때부터 국어 공부를 수업의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혼자 독학했는데 2학년이 돼서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근데 선생님! 바로 옆에서 수업 하시면 귀가 너무 아파요.“(2학년, 여)

표현되는 속마음
아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수업에 관한 내용만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수업에 임하는 자세와 변화 마음가짐 등도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소감이나 평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은연중 자기의 수업이 가장 훌륭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숨결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한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곡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짤막한 글에서 나는 다음 학기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지난 학기에는 5-6개조로 나누어 책을 읽고 자료를 만들어 전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발표, 토론 수업을 한 것이 특별한 수업이었다. 한 주 3시간 중 2시간 교과서 내용을 공부하고 한 시간은 문학 발표 토론 수업-책을 선정하고 발표, 토론하는 것-을 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든지 진정한 가치가 있는 일은 수고 없이 진행되는 것이 없다.
“비록 자습시간은 절대로 주지 않으셨지만 영훈고 선생님들 중 가장 다가가기 편하고 최고의 강의력을 가지셨어요. 그래도 2학기 때는 자습시간 쫌 주세요.”(2학년, 남)
“1학기 문학 시간에 처음 선생님을 접했을 때 친절한 사람같아 보였습니다. 점점 시간이 흘러 적응이 되니 더욱 친근해 보였습니다. 수행 평가는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토론 수업을 한다고 하셨을 때 가슴이 ‘띵~’ 했습니다. 힘들게 조사하고 발표하려 했지만 우리 조원들이 몇 번 미루면서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연기해주시면서 나름대로 끝까지 들어주셔서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친절하신 분입니다.”(2학년, 남)
아이들에게는 끝없는 격려가 필요하다. 이 고백을 한 아이의 구성원은 발표 수업을 무려 예정날짜보다 3주를 미루었다. 시험 전날 발표를 할 정도였으니까. 속으로는 화도 나고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웃으며 격려한 것이 글로 표현되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불찰을 인식하고 있고 또 그러한 것에 대해 선생님이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통해 영향을 받고 있음이 사실이다.

기도해서 좋아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른 것이 나에게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꼭 출석을 부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다. 일 년 간을 만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가장 인격적인 대우라는 것이 바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표현은 기도이다. 기도는 격려이며 축복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필기는 적당한 것 같구요. 발표 수업 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수업 시작할 때 일일이 출석 체크해 주시는 것도 좋았어요.”(2학년, 여)
"발표 수업을 해서 책을 읽었다.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기도를 해서 마음이 편했다. 좋았다.“(2학년, 남)
“선생님 수업에 대해 나는 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았다. 특히 소설을 배울 때 우리가 직접 나가서 연극으로 하게 하여, 내용 이해도 빠르게 되게 수업해주시는 것이 좋았다. 무교라서 매일 수업 시작 전에 기도하는 것은 조금 귀찮긴 하지만요. 2학기 수업도 지금처럼 열심히 가르쳐주세요.”(2학년, 여)
“수업 전 기도를 하시는 선생님이 너무 신기하고 정중해보였던 학기초에 우리가 집중을 하였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너무 나태해진 우리들 모습을 보며 일단 너무 죄송하다. 선생님의 수업은 이해도 쏙쏙 되고 너무 좋았다.”(2학년, 여)
“수업 시작 전에 짧게 기도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다른 수엄 시간에는 수업을 시작해도 어수선하고 계속 떠들고 그러는데 문학 시간에는 기도하고 나면 짝 정돈된 느낌으로 조용해져서 좋아요. 가끔 썰렁한 개그하시지만 재밌어요. 그리고 문학 시간에 딱 두 번 졸았어요. 원래 국어 싫어하는데 공부하기 쉬웠어요. 2학기에도 샘 파이팅!”(2학년, 여)

왜 눈물이 날까
이상하게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을 읽으면 눈물이 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아이들의 순수함이 글 속에 농축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십대만이 갖는 풋풋함이 녹아 있는 아이들, 그래서 좌충우돌하는 모습들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보게 된다. 아이들은 위의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예리함이 있다. 무엇을 보든지 바르게 보고 판단하며 옳은 것을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다.
토론 수업을 할 때면 자기 주장을 명확히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야단을 맞을 때는 고개를 숙일 줄도 안다. 그리고 이와같은 소감이나 평을 쓰라고 할 때면 상대방에 대한 평가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총명한 아이들이다. 이와같은 아이들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현재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불완전한 십대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또한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기에 사랑스럽다.
이 아이들 곁에 있는 나의 위치가 매우 감사하고 기쁘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느끼고 동행할 수 있는 교사가 나는 너무 좋다. 내가 무엇인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감사한 것이다.
아이들이 쓴 수업에 대한 소감이나 평가를 바탕으로 다음 학기의 수업시간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매 수업 시간 기도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시간 이후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소망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