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시인이 되었어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09.12.01
조회수
1389

모두 다 시인이 되었어요

사랑의 고백
칠판에 한참 판서를 하다가 아이들이 무척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필기를 하고 있었고 문득 뒤를 돌아본 나를 물끄러니 쳐다보았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해~“
아이들은 “으악~”소리를 내었다. 아이들은 당황, 황당...
“선생님, 왜 그러세요?”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너희들 사랑한다고...”
그런데 뒤에 앉아 있던 은희가 울기 시작했다. 진심이 통한 거였다.

네 가지 관리
하나님을 믿는 교사, 기독교사로 살아갈 때면 몇 가지 관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시간 관리, 건강 관리, 비전 관리와 영성 관리다. 물론 이 가운데 가장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영성 관리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는 다른 것들까지도 제대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면을 충실히 이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만남에 매우 중요한 부분은 단연 수업 시간이다. 나처럼 수업 전에 기도하는 교사들은 더욱 수업에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기독교 신앙은 준비되지 않은 수업을 엄호할 수 없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수업으로 인하여 기독교사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예배와 같은 수업
단적으로 수업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 따분한 예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예배, 역동적인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처럼 집중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업에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기도하는 교사는 교재 연구도 다른 교사들보다 더 해야 하고, 아이들과의 장벽도 헐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 시간이 예배시간이라는 마음으로 집중해야 한다. 집중의 대상은 하나님 그리고 내 사랑하는 제자, 아이들인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도 교사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실력이 있는 교사라 할지라도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다른 데 빼앗기고 있다면 어떻게 좋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인가?
기독교사는 세상의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진리를 심어주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른 교사들보다 더한 열정과 준비와 수고와 노력, 그리고 기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학벌이나 노하우, 실력으로 아이들을 옥죄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육은 감동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순발력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기존의 지식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일 때 교육 현장은 살아 움직인다.

소망의 길을 향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은 신나고 기쁜 시간이다. 물론 엎어지고 안 일어나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것을 나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프레임으로 본다면 생각이 바뀐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따르는 교육 현장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교사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통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내 앞에 엎드려 있다는 것은 곧 내가 그만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나를 통하여 그 아이가 변할 수 있다는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은사 찾기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주셨다.
세상의 지식만 무성한 세상에서 이러한 은사를 찾아주는 일이 요구된다.
100가지 중에서 99가지를 가지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교사를 통해서는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죽고 교사들도 죽는다. 힘 빠진 교실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이들마다 주신 한 가지의 은사, 그 달란트를 찾아주고 격려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그 한 가지의 은사를 발견케 해주는 선생님을 평생 잊지 않고 존경한다.

두 가지의 특별한 수업
일 년의 전반기, 즉 1학기 국어 수업을 할 때 나는 문학발표 수업을 한다.
근 두 달간 매주 한 시간씩을 빼어 문학발표 수업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작품을 읽고 조별로 토론하고 자료를 만들어 전체에게 나누어주며, 발표자들이 나와 발표하고 질문과 토론을 이끄는 수업이다. 즉, 전적으로 아이들이 주도하는 수업이다.
정확히 17년 전인 1992년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과 이 수업을 처음 시도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이 수업을 해내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가 보급되지도 않아 타이핑을 하기도 어려웠고, 또 아이들이 쉽게 자료를 찾기도 어려웠을 때인데 말이다. 모든 수업의 핵심은 교사의 열정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아이들과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가에 관건이 있다. 그 후 나는 이 수업을 매년 학교 현장에서 하였다 그리고 이 발표 및 토론 수업은 1998년도 교육부에서 주관한 우수 수업 사례로 선정이 되어 상금으로 500만원을 받았었다.

학급 가을 낭송회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은 가을 무렵이 되면 교정의 낙엽을 교실로 끌어모으고 시와 수필 낭송회를 갖는 것이다. ‘가을 작은 문학회’라고 할까?
먼저 아이들에게 그 행사의 취지를 알리고 직접 시와 산문을 쓰도록 준비시킨다. 남의 것을 모방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써보도록 한다. 이것을 하다보니 남학생들이라 하더라도 글을 잘 쓰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글의 수준은 높지 않지만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의 능력이 뛰어난 실제적 생활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여학생들은 말할 것 없다. 글쓰기가 다 끝나면 시간을 정해 학급을 무대처럼 꾸민다. 예쁜 초를 준비해 불을 켜놓고 칠판에 “영훈고 2학년 0반의 가을 이야기” 등으로 쓴다. 그리고 마이크, 스피커를 설치하고 음악을 준비한다. 그 음악 반주에 맞추어 시와 산문 등을 낭송하는 것이다. 어떨 것 같은가. 아이들은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친구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자신들이 평소에 보았던 친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수준을 보고도 놀란다. 별로 말이 없던 친구의 글을 통해 아픔도 느끼고 재미있는 글을 접하며 깔깔대고 웃기도 한다. 아이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수업은 활력이 있다. 살아움직인다는 것이다.
수업 진도가 조금 늦추어진다 하여도 나는 이 두 가지의 수업을 매년 고수하고 있다. 그만큼 이 수업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환경과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해나가야 하는 지혜와 열정이 우리 교사들에게는 필요하다. 좋은 성과는 치밀한 계획, 변함없는 열정,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소감
아래는 시와 수필 가을 낭송회를 마치고 아이들이 스스로 써낸 소감문이다.
- 상당히 즐겁고 유쾌한 시도 많고 감성적인 시도 많았다. 스스로 나 자신이 발표를 잘했다면 좋을텐데 잘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상당히 즐거웠다.
- 나보다 길고 너무 잘 쓰고 감정 이입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 암송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보고해서 실수를 좀 하기도하고 시선 처리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자리를 한 번 하니 진지한 자리에서 진지한 말과 표정을 할 수 있는 경험을 한 것 같다.
- 처음 시작을 하였을 때, 분위기나 아이들 하는 것이나 그럭저럭 보통으로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분위기도 좋고 몇몇 아이들의 시에서 진심이 묻어나와 감동도 받고 몇몇 아이들의 시는 웃겨서 웃기도 하였다. 분위기가 바뀌고 아이들도 바뀌는 모습이 새로워 보였다.
-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내가 지은 시를 낭독하는 기회라니... 이과의 길을 걷는 내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를 낭독해보고 시가 많이 부족해보여서 아쉬웠고 다음에 시를 쓸 땐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의 마이크에 담겨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들... 꽤 멋있고 괜찮았다.
- 나는 이런 수업이 인상깊었다. 발표를 하면서 매우 떨렸고 애들이 너무 잘해 와서 아이들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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