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믿음
인도하신 하나님
2000년도에 다시 시작된 영훈고의 부흥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었다.
기독교학교가 아닌 곳에서 하나님은 더욱 그 이름을 높이고 계셨다. 영광을 받고 계셨다. 미아리 술집 많은 거리에 있는 작은 학교이지만 기도하는 우리를 심어두시고, 더욱 기도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하게 하셨다. 비단 영훈고에 관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국내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축복의 도구로 삼고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성적지상주의와 외모, 물질이 판치는 현대 시대에 사람의 영혼을 생각하게 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리라. 그래서 기독교학교가 아닌 영훈고에 심어두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의 변화
영훈고에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사장님의 사택이 학교 안에 있다. 또한 개교 때부터 연면히 흘러온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사상이 영훈고에 가득하였고, 그때에도 기도하는 선인들의 기도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장님의 마음도 만져가고 계심을 보고 있다. 아직 교회는 나가지 않으시지만 꼭 예수님께서 다시 만나주시고 교회로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히 11:1)고 하셨듯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시각이리라 하나님의 프레임이라.
2000년대 이후 여러 교장선생님들이 거쳐 가셨다.
불교신자, 다원론자. 장로님 등등, 그리고 현재의 불신자인 교장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다소의 변화가 있는 듯했다. 외적으로는 기독교적 모임이 종교행사처럼 보이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관리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시각에서는 사실 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은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니까. 하나님께 헌신한 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또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 또한 하나님의 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니까.
신실하신 하나님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그 상황의 변화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점이다. 반응하는 점이다. 느부갓네살왕에게 포로로 잡힌 다니엘, 그리고 세 친구들의 삶이 유난히 떠오르는 때이다. 믿음의 선을 그었던 다니엘, 그리고 풀무불에 던져지기까지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세 친구들. 믿음은 죽음을 초월한다. 그 믿음의 소유를 본받고 그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며 그렇게 사단에게 승리하셨다. 죽음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낮아지는 방법을 통해 인류에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경험하는 어려움과 핍박, 고난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기에 참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고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곧 나를 만드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내가 만나야 할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의 지혜자는 자기의 머리를 믿는다. 자기의 학벌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경험, 인맥을 믿는다. 그것이 자기의 재산이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관계가 아니라, 자기의 머리 아래 굴복하기를 원한다. 복종하기를 원한다.
내가 근무하는 교육 계통의 집단에도 이러한 관계를 종용하고 있다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 직장이 아닌 곳이 바로 학교라는 공동체일 것이다. 가장 인격적이고 가장 겸손하고 가장 격려해야 할, 그래서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곳이 학교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사랑으로, 격려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한결같은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온전한 인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학교에 사랑이 가득하기를
영훈고에 또 한 번 상황의 변화가 일고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관리자로 인하여, 세상이 추구하는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곧, 그 어느 때보다도 엘리트 교육, 성적지상주의, 일류대학을 목표로 하는 변화, 그리고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인성과 재능계발의 활동이 위축되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잔존하고 있는 이 현실은 하나님을 높이는 활동까지 제한 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에 아무리 변화가 있다 하여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끌고 계심을 믿는다. 풀무불 같은 공동체일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크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여건과 상황에 좌우되는 믿음이 아니라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며 나아가는 우리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은 축복인 것이다.
“고난은 유익”이다. 하나님으로 받는 고난은 기쁜 것이다. 영훈고뿐만 아니라 이 시대 모든 비기독교학교에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미션스쿨과 기독교학교에 하나님의 사랑이 선포되기를 기도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격려하시며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며 나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여호와닛시!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 가운데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다.
준비된 교사는 기도하는 교사이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헌신하는 교사이다.
세상의 잣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우리이기를 소망한다. 상황과 여건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승리하게 하시고 영광 받으실 것임이 틀림없다.
믿음은 '~때문에'(because of)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inspite of)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