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진가 그리고 눈물
작성자
최*하
작성일
17.08.26
조회수
1042

‘진진가’ 그리고 눈물

‘진진가’를 아시나요?
‘진진가’는 ‘진짜 진짜 가짜’의 줄임말이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당위적인 설명을 힘들어 한다.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이론적 설명으로 들어가면 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용은 같지만, 운반 수단 즉,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좋은 동역자인 <강의하지 말고 참여시켜라>를 쓰신 권순현 선생님의 책을 읽고, 우리 아이들과 ‘진진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의 아이들은 학급 개념이나, 학교 개념 등의 공동체 의식이 거의 없다. 자기만 아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급에서도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아주 가까운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둔다. 심지어 아예 서로 이름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2학기를 들어서며 서로를 다시 한 번 알리고, 또 아는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지만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입을 다물기 마련이다.
어떤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또한 한부모 가정 등등의 아이들은 자기를 소개하는데 꺼려하는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수업이 진행되기를 기도했다. 또한 그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가슴 따뜻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나의 노하우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항상 감동이 가득하기를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진진가’를 통한, 퀴즈 형식으로 서로를 알리고자 하는 방법을 떠오르게 하셨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셨다.
 
영훈고의 ‘진진가’
나는 먼저 우리 학교에 대한 ‘진진가’를 만들었다. 다음의 다섯 가지 중 네 가지는 사실이고, 한 가지는 ‘사실 같은 가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영훈고를 세우신 분은 서울시 초대교육감이다.
2. 현재 교장선생님의 나이가 가장 많다.
3. 백운관 앞에 서 있는 시비(詩碑)는 최관하 선생님 시다.
4. 영훈 초창기에는 영훈유치원도 있었다.
5. 영훈고가 남학생만 있었던 시절이 있다.
 
ppt를 띄우는 순간이나 영상을 트는 순간, 아이들은 집중도가 높다. 더욱이 하나하나 뜨는 글귀를 보며 아이들의 뇌가 회전을 한다. 위의 다섯 가지 중에 아이들은 손을 들고, 가짜인 답을 외친다. 맞춘 아이에게는 사탕이나 초컬릿을 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했고, 모르던 사실을 알아가는 순간을 기뻐했다. 또한 생각지 못한 친구가 맞출 때는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위의 정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답은 2번이다.
 
나의 ‘진진가’
그 다음은 나의 ‘진진가’를 띄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워너원의 박지훈과 띠동갑이다.
2. 나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한 적이 있다.
3. 나는 교사 시절 학생 고막을 터뜨린 적이 있다.
4. 내가 다닌 대학은 불교대학이다.
5. 내가 군대 갈 때 몸무게는 47kg이었다.
 
아이들은 또 난리가 났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2번과 4번이었는데, 나위 ‘진진가’ 중 가짜인 정답은 2번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해 본 적은 없고, 4등은 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가정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원하던 대학을 가지 못하고, 동국대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4번은 진짜가 맞다.
박지훈은 토끼띠다. 그래서 사실 띠동갑이지만 나와 ‘띠띠띠’ 동갑이다.(하여튼 띠동갑).
교사 10년차 때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하는 학생을 격려한다고 손을 들었다가 귀를 잘못 건드려 고막이 터진 사건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기도하는 교사가 된 것이다.
 
‘진진가’를 작성하며
아이들의 흥분은 최고조로 달했다.
자기들 것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것을 나는 감지했다.
“자~ 얘들아. 이제 뭘 하려는지 알겠지? 이제부터 너희들의 ‘진진가’를 만드는 거야. 내가 나눠준 백지에 네 개는 진짜 사실을 쓰고, 한 가지는 진짜 같은 가짜 알지? 그리고 앞뒤의 친구들과 서로 맞추기 하고, 나중에는 나하고 같이 전체 맞추기 해보자. 시~작.”
아이들은 한 명도 엎드려 있는 아이가 없었다. 딴짓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쓸까를 연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나는 ‘야곱의 축복’을 틀어주었다. 이어지는 ‘축복합니다’의 가스펠송 음악에 맞추어 아이들은 왁자지껄하며 한껏 즐거운 분위기 속에 잘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쓴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자~ 얘들아, 짝하고 다 쓴 사람은 서로 맞추기 해보렴. 앞뒤하고 해도 좋고. 짝하고만 해도 좋아.”
아이들은 이내 서로 나눔을 갖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진진가’
약 5분 가량 후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번에는 너희가 쓴 것을 나에게 다오. 사실은 너희가 한 명씩 나와서 진진가를 발표하면 좋은데 시간 제약이 있어서. 그래서 오늘은 그냥 내가 너희들 것을 소개할 테니까, 그 친구의 가짜 내용이 무엇인지, 퀴즈로 진행해보자.”
나는 아이들이 쓴 것을 다 걷었다. 그리고 한 명씩 발표하기 시작했다.
“자, 다섯 가지를 다 듣고 난 후에 손을 들어. 그리고 가짜를 맞추면 상을 준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까지도, 답을 못 맞추면 이 글을 쓴 사람에게 상을 주고~ 무슨 얘긴지 알지?”
아이들은 빨리 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때부터의 수업 시간은 난리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질서 있는 활기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무척 재미있어 했고, 예상치 못한 내용이 진짜로, 가짜로 나타났을 때는 “정말?”을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의 ‘진진가’
다음은 아이들이 쓴 ‘진진가’의 내용이다. 몇 명의 아이들 것을 소개한다.
 
1. 나는 머리가 길었을 때 허리까지 길러봤다.
2. 1년 동안 나는 5kg넘게 쪘다.
3. 나는 완전 무쌍이다.
4. 나는 발 사이즈가 220cm이다.
5. 나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이 아이의 내용 중 가짜인 정답은 5번이다.)
 
1. 난 파충류를 6종류와 절지류 2종류를 키웠었다.
2. 나는 뱀을 키운 적이 있다.
3. 나는 전갈한테 쏘인 적이 있다.
4. 나는 타란튤라한테 물린 적이 있다.
5. 나는 키가 182~183cm이다.
(이 아이의 내용 중 가짜인 정답은 4번이다.)
 
1. 나는 원래 아주 심한 악성곱슬머리다.
2.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3. 나는 리듬체조를 4년 배웠으며, 선수 제의를 받았으나 하지 않고, 일반 학생이 되었다.
4. 우리 아빠는 가수이다.
5. 나는 맹장수술을 했었다.
(이 아이의 내용 중 가짜인 정답은 2번이다.)

1. 나는 김을 밥 없이 세 통을 먹은 적이 있다.
2. 나는 어릴 적 산낙지를 먹다가 목에 걸렸는데도 빼내고 나서 계속 먹었다.
3. 나는 닭볶음탕을 먹다가 목에 걸렸는데도 빼내고 나서 다시 먹었다.
4. 나는 밥 없이 문어를 초장에 찍어 먹은 적이 있다.
5. 나는 어릴 때 밴드를 삼킨 적이 있다.
(이 아이의 내용 중 가짜인 정답은 5번이다.)
 
‘진진가’ 그리고 눈물‘
내가 들어가는 12개 학급을 하던 중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진진가’에 자기의 성격, 좋아하는 것, 잘 먹는 것, 가정 환경, 고민, 취미, 비전 등이 나타나,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수업은 매 시간마다 즐겁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한 남학생의 ‘진진가’를 접하는 순간, 나와 아이들은 ‘이거 진짜야,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인 일이 있었다.
그 아이의 진진가는 이렇다.
 
1. 나는 엄마가 너무 미워 엄마에게 충격을 주기 위하여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2. 나는 여태까지 남녀공학을 나오면서 혹은 TV에나에서 봤었던 모든 여자 중에 좋아했던 여자애가 단 한 하나도 없다.
3. 나는 11년 전에 6살 때부터 10살 때까지 5년간, 6,7살은 가족이 나를 믿어주지 않았고, 친척이 뚱뚱하다며 먹는거 가지고 놀리며, 8,9,10살에는 학교 선생님들이 심장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안 좋게 보고,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고, 심장병 장애인이라고 불러 이 5년간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4. 나는 김00 선생님께서 가신다는 것을 알고 울다가 기절하여 잠이 들었던 적이 있다.
5. 나는 한 달 동안 교통비를 제외하고, 2,000원밖에 쓴 적이 없다.

이 내용을 읽는 나도, 듣는 아이들도 ‘이거 진짜야? 뭐가 가짜야?’ 의아해 했다.
나는 이 글을 쓴 아이가 심장병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과거에 3번과 같은 아픔을 겪으며 지내온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3번이 가짜같다고 말한 아이들의 생각을 무산시키며, 이 글의 주인공 아이가 대답한, 가짜인 정답은 5번이었다.
아이가 그동안 힘들게 지내온 사실이 학급 아이들에게 전달된 듯 했다.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숙연할 정도였다.
내 마음도 같았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욱이 자기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한 선생님께서 영훈고를 떠나실 때 울다 기절했다는 내용에 내 눈에는 더욱 눈물이 솟구쳤다.
 
울며 하는 ‘진진가’
계속되는 학급에서도 활기찬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어지는 1학년 여학생 한 학급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움직이면 행복해 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통해 깨닫도록, 느끼도록 하는 것이 교사도 학생들도 신나는 수업이 된다.
아이들의 ‘진진가’를 다 발표하고 난 후,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딴 반 한 남학생이 쓴 진진가거든~.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소개한 아이가 있어. 누구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떤 내용이 가짜인지 맞춰볼래?”
나는 심장병 아이가 쓴 ‘진진가’를 읽어주었다. 다섯 가지를 다 읽어주었다. 그 때 여학생들은 ‘설마~’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3번이 가짜 아녜요? 진짜같은 가짜.”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정답을 말했다.
“5번이란다.”
아이들의 얼굴이 순간 숙연해졌다. 말이 없었다. 남학생 반에서 경험했던 바로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묶어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얘들아. 우리가 사실 옆에 있지만 관심을 안 가지면 잘 모르잖아. 그런데 오늘 이런 순서를 가진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우리 서로 잘 알려고 노력하자. 그리고 이 친구를 위해서 우리 같이 기도하면 좋겠어. 힘들고 어렵게 지내고, 과거 상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 우리 사랑하는 친구들이고, 특히 영훈고 45기 너희들 동기 아니니?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들며 지내왔을까? 이제 우리 알았으니까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힘내라고~ 해주자, 응?”
이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목소리도 떨렸다. 자맥질같은 울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나를 주시하고 있던 아이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한 쪽에서는 훌쩍 거리고 있었다.

눈물의 ‘진진가’를 허락하시고, 친구를 위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심장병을 앓는 친구가 온전히 회복되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며,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