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우세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17.11.17
조회수
1002

선생님, 왜 우세요?

‘울보선생’으로 살아온 지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울며 기도했던 많은 흔적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열매가 되었다. 그것을 보게 하셨고,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케 하셨다.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왜 별명이 ‘울보선생’이냐고? 남자가 왜 그리 우냐고?
우리가 살아갈 때는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대부분, 억울하거나, 분노하거나, 예기치 않은 일을 맞닥뜨렸을 때나, 무척 실망스러울 때 눈물이 난다.
하지만 나의 눈물은 이런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기도하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이들, 망가진 아이들, 소망이 없는 아이들, 가정이 무너진 아이들, 비전이 불투명해 흔들리는 아이들 등 십대의 성장통을 경험하는 아이들이나 힘겨워하는 어른들을 두고 흘리는 기도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 분노, 실망과는 차원이 다른 눈물이다. 이런 눈물은 영혼을 맑게 한다. 기도의 눈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희망과 기대와 소망의 눈물이 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눈물이다.
그래서 울보선생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참으로 값지다.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하게 된다.
 
교무실에 갔다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언젠가부터 수업을 할 때도 하나님께서 눈물을 주실 때가 있다. 대화를 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그랬다. 기도의 시간만이 아니라, 언제나 눈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떠올리며 감사했다. 나의 앞에 가던 2학년 여학생 두 명이 뒤를 돌아보고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흠칫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왜 우세요?”
순간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무어라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가는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눈물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할 시간도 없었다. 그 아이들은 내가 수업 시간에 만난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순간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셨다.
“응, 너희들을 보니까 감동의 마음이 막 일어나서, 그게 눈물로 나온거야.”
아이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나의 대답에 소리쳤다.
“헐~!”
그러면서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저희를 보고 감동요? 선생님. 저희 얼굴을 보세요. 감동이라뇨~? 이 얼굴이요? 대박.”
“뭐라고?”
나는 아이들의 이 모습을 보며 깔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한 채로 말이다. 아이들은 외모를 말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만든 창조적 걸작품이 이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감동이라고 말한 것인데~,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이 말을 듣고 더욱 기뻤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뛰어갔다. 이렇게 ‘울보선생’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린다. (17.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