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선교문화센타 12년 사역 이야기
작성자
최*하
작성일
18.07.02
조회수
1030

영훈선교문화센타 12년 사역 이야기
 
쉼터가 필요했어요
2000년대 초반, 기도하는 가운데 배회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청소년들이 학교나 가정,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할 때였다. 그리고 비기독교 학교인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언제나 예배드리고 집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 무렵, 한 여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또 가출했어요.”
교회를 나가는 아이였다. 두세 달이 멀다하고 가출을 하는 이 아이가 자신이 왜 그렇게 사는지 어렵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하고 이혼한 아빠가 새 엄마를 맞이했는데, 새 엄마가 자기를 너무 싫어한다는 것, 심지어 욕설까지 퍼붓는다는 것, 아빠에게 얘기했더니, 자기만 야단맞았다는 것 등등.
아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다른 형제들은 없이 자기 혼자라는 말은 더욱 이 아이를 고립되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그럼 어디에서 먹고 자고 하니?”
“아는 오빠 집에서요.”
 
기도하며 구했어요
PC방에서 만난 오빠라 했다. 자취를 하고 있는 청년이 다가와 물었다.
“재워주고 먹여줄게, 우리 집 갈래?”
딱히 갈 데도 없는 이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청년은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가로 여학생의 몸을 요구했다. 부부 아닌 부부 같은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여학생은 나에게 이 말을 꺼내놓으며 울었다.
“선생님,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죠? 저 하나님 믿는데~.”
울먹이는 여학생 앞에서 나 역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이 여학생을 보내고 난 후, 하나님께 매시간 매달렸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예배드리고,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쉼터를 주세요. 우리 아이들, 이렇게 살면 안 되잖아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허락해 주세요.”
기도는 계속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 장로님의 마음을 움직여 2,000만원을 보내주셨다.
 
영훈선교센타 사역의 시작
영훈고 교문 앞 파리바게트 3층이 27평으로 비어 있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08만원씩을 내면서 쉼터 및 선교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 때가 2006년 4월 1일이었다. 영훈고 기독동문회 동문들의 도움이 컸다. 또한 여러 기도하는 동역자들도 마음과 물질, 기도로 함께했다.
이날 영훈선교회가 발족되었다. 기독교사, 기독학생, 기독동문, 기독학부모, 중보자 등으로 구성된 영훈학교 중심의 동역자들의 모임으로 발족된 것이다. 이곳에서 5년간 사역이 계속되었다.
코스타 동역자들의 공연과 설교, 강의 등등, 학교 학생들의 친구초청 예배, 신임교사 환영예배, 일주일에 두 번 예배, 동문 예배, 학부모 기도회, 큐티 모임방 등등 다양한 기독활동을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계셨다. 그리고 힘들고 지친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들도 상담 장소로 이용이 된 감사한 공간이 되었다.
 
왕도깨비 호프집을 접수하고
5년 남짓 사역을 계속하고 있던 때, 한 남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게 뭐예요?”
“뭐?”
그 아이가 가리킨 것은 영훈센터 맞은 편 술집, ‘왕도깨비’라는 지하 호프집이었다.
“저게 왜?”
“학교 앞에 웬 술집예요? 저거 접수해버리죠.”
접수하라는 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기도에 들어갔다.
“왕도깨비를 주시옵소서.”
동역자들에게 기도 요청을 돌렸다. 국내외 동역자들이 기도에 열을 올렸다. 특히 외국의 코스타 사역자는 금식하며 중보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가 바뀌어 술집이 되는 세상인데, 술집을 바꿔 예배 처소로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하며 말이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결국 호프집은 장사가 안 되어 권리금도 못 받고 나가게 되고, 우리는 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21만원. 돈도 없었지만, 기뻐하시는 일은 하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간증을 주시며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우리를 그 안으로 입성토록 하셨다. 이날이 2011년 6월 4일이었다.
 
오륜교회의 예배 처소로
하나님께서는 2018년 5월 31일까지 이 곳에서 7년간, 총 12년간 센터 사역을 하게 하셨고, 이 사역을 무척 기뻐하셨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작은 교회, 세 교회가 이 센터를 주일에 빌려 사용하기도 했다. 이 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 작은 교회에 힘이 되게 하시고, 또한 영훈학교의 복음화와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으니 말이다.
2015년 12월 28일, 영훈학원의 고난 가운데, 오륜교회가 영훈학원을 인수하도록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다. 15년간 영훈학교의 복음화를 위해 정말 많은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때,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표는 2015년, 영훈학원 50년의 끝, 희년의 때, 오륜교회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2016년 3월 27일, 영훈학원 창립 51주년 기념일, 학교 안의 교회 ‘영훈오륜교회’가 분립 개척되었다. 학교 안의 주일 예배는 소강당에서 드리기로 했지만, 수요예배, 새벽예배, 금요예배를 드릴 교육관이 따로 없었다. 영훈센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하나님께서는 영훈센터를 미리 예비하시고, 귀한 예배 처소로 사용토록 하신 은혜 또한 감사했다.
 
영훈고 안에서의 사역으로
2017년부터 기독교학교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영훈학교.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순간순간 간증이 넘쳐나도록 인도하고 계셨다.
이제 영훈센터에서 했던 여러 복음의 활동을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도록 분위기와 공간 등이 조성되었다. 교목실을 허락해주셨고, 작은 예배처이며 카페인 코이노니아, 그리고 큰 집회를 할 수 있는 소강당도 마음껏 사용하도록 인도하고 계셨다. 할렐루야!
2018년 5월 31일, 세상적으로 말하면 영훈센터는 문을 닫았다. 학교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역이 활발히 시작되어서, 근 일 년여를 비워 놓았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 곁으로 가듯이, 영훈센터 공간도 자신의 사명을 끝낸 것이다. 계약 기간이 끝날 시점,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고, 철거와 원상 복귀를 했다. 그리고 벽을 붙잡고 나홀로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눈물을 부어주셨다. 건물 그 자체, 공간 그 자체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여러 동역자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불러일으켜주시고, 사랑의 수고를 베풀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렸다. 그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고백처럼, 알몸이 된 듯한 센터 공간에서, 나 역시 하나님의 사명자로 살다가 이 땅에 남김없이, 하나님께 가리라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며 합력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영훈센터는 이제 없지만,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간증이 살아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 땅의 다음 세대를 위한 복음의 행보는 계속 진행케 하실 것이라 믿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천국에 갈 때까지 나아가게 하시리라.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립니다. 아멘!
 
2018. 6. 30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최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