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보다는 사역자로 살아
작성자
최*하
작성일
18.11.23
조회수
1015

사모보다는 사역자로 살아
- 결혼 26주년 이야기
 
결혼식 사건
11월 7일, 결혼기념일이다.
1992년에 결혼했으니까 아내 오은영과 결혼한 지 무려 26년이 된 날이다. 아내는 결혼 후 수 년간 결혼식 날을 생각도 하기 싫다고 말했다. 아니,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지금의 모습은 무척 감사하지만, 감정상으로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결혼식, 영락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다음 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때까지 술독에 빠져 살던 나는 아내와 처가의 권유로 교회를 다녔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다음 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던지라, 결혼 후 나와 아내 각각 대여섯 명의 친구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다. 그리고 취한 상태로 슬며시 빠져나온 나는 종적을 감췄다.
당시의 내 술버릇은 술만 취하면 길에 앉아 글을 쓰든가, 혼자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든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내는 나를 찾아냈지만, 인사불성이 된 나를 약혼식을 했던 호텔로 내 친구 들에 업히게 해 데리고 가, 눈물과 한숨을 쉬며 지샌 첫날밤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사실 아내에게 무척 미안해 할 말이 없다.
결혼식 다음 날 호텔 침대 한 켠에 앉아 지쳐 쓰러져 있는 아내를 보며, 정신차리고 한 첫 마디는 “미안해, 정말”이었다.
 
하나님 그리고 변화
그 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제자훈련으로 양육이 되었다.
나는 남제자 1기, 아내는 여제자 1기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시고 변화시켜 주셨다. 기도하는 남편, 기도하는 아버지, 선생님으로 세워가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의 삶이 간증이 되었고,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시고, 성령으로 변화시켜주셨다. 두 딸 다솜이와 다빈이를 선물로 주셨고, 불신자였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영접해주셨다.
한 사람의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낳는다. 성령님께서 그 변화된 사람을 사용하셔서 변화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변화하면 다른 사람이 변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변한다.
제사를 드리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변화시켜 주셨다. 몸 담고 있는 나의 모교, 영훈고를 15년의 집중적 기도 끝에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주셨다. 기독교학교로 변화시키신 것이다. 또한 섬기는 교회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케 하시며, 다음 세대를 일으키기 시작하셨다.
 
사모보다는 사역자로
제자훈련과 사역자 훈련 등등의 훈련을 받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은 신학공부를 하여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당신의 어머니도 목사이고, 할아버지도 목사, 남동생도 그 당시 목사가 될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목사가 너무 많으니까 보태지 마십시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70~80명을 하고 있던 지라,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 졸업 후 결국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아내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한 후, 나를 격려하며 축복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내에 대해 나에게 주신 음성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사모보다는 현장 사역자로 살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귀한 은사가 있거든.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역자로 살아. 나 역시 단독 목회를 하는게 아니니까 나에게 주신 사역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반적인 사모처럼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대로 사역하면 돼.”
하나님께서는 기도같은 이 말을 들어 지금까지 응답으로 축복해주고 계셨다.
 
결혼기념일 사역의 날
결혼 26주년 되는 11월 7일은 ‘영훈고 수험생 격려 콘서트 및 기도회’가 있는 날이었다. 기독교학교로 바뀐 지 2년째, 아직 완벽한 틀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기도하며 최선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날 성령의 놀라운 은혜와 감동을 부어주셨다.
아내는 11월 5일 포천으로 사모어머니학교를 섬기러 2박3일의 일정으로 떠났다. 감기와 몸살, 그리고 목청이 다 쉬어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침에 나는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포천에서 나는 학교에서 그렇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11월 7일, 고3수험생 행사를 다 마치고, 수고하신 선생님들과 제자들과 식사를 한 후,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아내는 그 늦은 저녁 시간에 사역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었다.
“조심히 와. 집에서 봐~.”
큰딸에게 부탁해서 케잌을 준비하고, 편지와 용돈을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나도 집으로 차를 몰았다.
 
주신 사명대로
집에 당도하니, 케잌을 놓고 불을 밝히거나, 결혼기념일을 축하할 어떤 상황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니, 지쳐 쓰러져 있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다 쓰는 아내는 사역을 다녀 온 후에는 항상 그랬다. 이럴 때는 쉬게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법이다.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아내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잠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편지와 용돈을 아내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가려는 순간, 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빵 봉지였다. 식빵, 분명 먹다 남은 것이었다.
아내가 운전을 하며 그 빵을 입에 물고 집으로 운전해 온 것이 머릿속에 스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저녁 시간 막히는 길에서,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빵조각을 입에 물고 감사의 고백을 하며 운전을 하는 아내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내가 아내에게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모보다는 사역자로 살아!”
아내는 사역자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진 사명, 특히 가정과 어머니들을 세워가는 귀한 사역에 부름 받아, 국내와 세계를 다니며 가정을 세워가고 있다.
결혼기념일 26주년, 오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여보, 잘하고 있는거야. 우리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하늘나라에 있는거야.”
 
기도한 가운데 사역자의 마음을 주시고, 또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영광과 가정 회복을 위해 사랑하는 아내 오은영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18.11.7 결혼 26주년에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최관하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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