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선배들, 재수 없어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20.07.01
조회수
1004

고3 선배들, 재수 없어요
 
격려글을 쓰며
2019.11.14.이 수능일이다.
수능을 앞둔 한 달 전부터 영훈고는 매년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격려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큰 전지에 붙이고, 식당 건물 청운관 1층 벽에 게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고3 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내려오며 그 글을 읽게 된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고3들은 격려를 얻고 힘을 얻는 것을 보게 된다.
A4 용지 절반 정도의 크기에 1, 2학년 남녀 학생들이 쓴 선배들을 격려하는 내용은, 짧지만 강하고, 비뚤배뚤한 글씨지만 사랑이 담겨져 있다. 한 마디로 ‘감동’이라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이 쓴 글
수 백 장의 글을 동료 선생님들 몇 분과 수업 중에 아이들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전지를 사서 붙이고자 했다. 하지만 붙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 모두 용지의 크기에 맞춰 써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여백을 잘라내는 수고가 뒤따른 것이다.
나는 결국 빈 시간을 이용해 자르고 또 잘랐다. 선생님들이 수행 평가 등으로 무척 바빠서 예년처럼 많이 도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을 격려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마음이 주어진 것에 무척 감사해 하며 자르기에 집중했다.
 
전지에 붙이며
다 자른 내용을 전지에 붙이기 시작했다.
일손이 모자라 무척 분주한 때 선생님들이 빈 수업 시간에 달려왔다. 그리고 전지에 붙이고 또 수업에 달려 들어갔다. 이렇게 솔선해서 움직이는 선생님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도움을 요청할 때 돕겠다는 것보다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섬기는 수고를 감당할 때의 기쁨을 아시는 분들이기에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수고가 누군가에게 큰 기쁨이 된다면, 우리는 이 수고를 왜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아이들이 쓴 글이 수 백장이기 때문에 오리고 붙이는 일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결국 가능케 하셨다.
 
단순 노동에 강해요
화요일 저녁은 8시부터 10시까지 학교에서 학부모기도회가 있는 날이다.
나는 단톡방에 공지를 했고, ‘단순노동을 하고 기도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올렸다. 부모님들께서는 7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척 능숙하게 전지에 아이들이 쓴 글을 붙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이미 섬김이 몸에 밴 분들이라 그런지, 즐겁고 기쁘게 그 일을 감당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쓴 글도 읽어보시며, 또한 당신의 자녀가 쓴 글 아닌가 하고 추측하며, 어느덧 부모님들의 섬김으로 전지 9장의 수험생 격려글이 완성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수고하신 학부모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1학년 10반 아이들의 수고
이제 식당 건물에 붙이는 일이 남았다.
1학년 10반 4명의 아이들이 자원해서 봉사하겠다고 나섰다. 이 아이들과 함께 식당 건물 1층으로 갔다. 그리고 전지를 벽에 붙였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현수막도 걸고, 고3 수험생들이 생각을 남기도록 빈 칸의 전지도 붙여 놓았다. 사다리를 붙잡고 있는 여학생들, 그리고 올라가서 현수막을 거는 선생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사랑의 수고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감사해요
그 글이 붙은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3학년 학생들의 피드백이 들어왔다.
“완전 감동예요.”
“정말 위로가 돼요.”
“힘이 나요.”
“저거 누가 쓴 글인지 알 것 같아요.”
후배들이 쓴 짤막한 격려글을 통해 3학년 아이들은 큰 기쁨과 격려를 얻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사랑에는 표현이 따른다. 사랑은 행함이 따른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영훈고는 참으로 행복한 학교라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19.11.1
영훈고에서 최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