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면 지는 거다
작성자
최*하
작성일
20.07.01
조회수
1005

화내면 지는 거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수십 년간 한 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 보니, 동료 교사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하면서도, 직장 동료를 가족 개념으로 생각하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직장과 가정이 꼭 같지는 않다하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학교의 모습은 ‘가정같은 학교, 가족같은 스승과 제자’로 지내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학교를 만들어가는 꿈을 그리며 어언 30년을 왔다.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특히 금년에 교목실의 업무를 거의 혼자 하다 보니, 매일 정시에 퇴근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기에 분주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일을 한 가지씩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학생들에 관한 자료를 센 쪽지로 첨부하여 담임교사들에게 보냈다. 이내 선생님들은 “감사합니다.” “잘 받았습니다.”의 내용으로 나에게 회신을 보내왔다. 그런데 문득 눈에 확 들어오는 회신이 있었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깜짝 놀랐어요
이 글을 보는 순간 L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런 것을 음성 지원이라고 해야 하나? 나보다 한 살 아래인 L 선생님이 무슨 뜻으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했다. 다른 분들에게 보낸 내용을 그대로 보냈는데, 내가 이분에게 무슨 특별한 실수라도 한 것일까?
급할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필요했다. 더욱이 L선생님의 글귀는 격앙된 감정을 전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나는 잠시 마음으로 기도하고, 쪽지로 회신을 보냈다.
“잠시 후 전화 드릴게요.”
그리고 1, 2분 후에 전화를 했다. 통화 중이었다. 잠시 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L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L선생님. 무슨 일예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쪽지 보고 깜짝 놀랐네~.”
격앙된 것 같은 글보다는 한결 목소리가 가라앉은 L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선생님. 3학년 생기부 기록을 지난 주에 다 했는데~, 오늘 보내서 말예요. 그거 다시 추가해야잖아요~~.”
 
미안해 미안해
나는 어떤 이유에서 L선생님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큰일이 아닌데, L선생님은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라는 글을 보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담임교사가 아이들의 생기부를 입력하는 기한 날짜는 내가 보낸 다음 날까지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일일이 따지며 “내일까진데 왜 그러냐” 등등으로 얘기를 하다보면 L선생님의 성향상 말싸움이 될 것이 뻔했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국 이기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웃으며 말했다.
“아~하. L선생. 그것 때문에 그런거야? 미안해. 교목실이 워낙 일이 많아서, 이제 정리가 다 되었지 뭐야. 미안, L선생이 번거롭게 됐구나, 미안해, 다음 부터는 미리미리 해서 보낼게~.”
미안하다는 나의 말을 연거푸 들으며 L선생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이내 알았다고 하며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치고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언젠가부터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마음의 평정을 찾게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항상 외치는 “화내면 지는거다”라는 말이 내 삶에 적용되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무척 감사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특별히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L선생님을 하나님께서 깊이 만나주시길 기도한다. 순간적 감정에 폭발하지 않고 주님으로 인해 마음의 평정을 누리며 살아가는 분이 되길 이 시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2019. 12. 1
영훈고에서 최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