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기다림의 현수막
작성자
최*하
작성일
20.07.05
조회수
954

벚꽃과 기다림의 현수막
 
교정의 벚꽃
내가 근무하는 영훈고에는 큰 나무가 그다지 많지 않다.
학교 강당인 백운관과 식당 건물인 청운관을 세우며 수십 년 된 큰 고목을 여러 그루 잘라냈었다. 더욱이 교정 언덕길을 개선할 때는 우측에 즐비어 있던 개나리가 잘려졌다.
작년에 스탠드 계단 공사를 하며, 등나무가 사라졌고, 영훈고의 가장 오래된 나무중 하나였던 은행나무가 잘리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꿋꿋하게 남아 있는 나무가 있으니, 곧 벚꽃나무다. 이 나무는 대여섯 그루가 되지만, 영훈고를 한껏 예쁘게 치장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또는 선생님들과 함께 교정에 나와 벚꽃나무와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교문에서 들어와 약 100미터 전방 우측에 있는 벚나무는 아이들이 즐겨 사진 찍는 장소, 곧 ‘벚꽃 포토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이 없어요
금년에도 벚꽃은 영훈고를 찾아왔다. 그리고 하얀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바람이 불면 백설처럼 난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벚꽃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예년과 다른 것은 학교에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개학을 몇 차례 연기하다가 이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는 때, 유독 벚꽃에 어우러져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나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한 선생님의 독백같은 고백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학교가 아이들이 없으니까 허전하고,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나네요.”
출퇴근을 하며, 벚꽃을 보면 볼수록 아이들이 투영되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 참 많이 보고 싶다.’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나 그리움과 같은 감정들은 잘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특히 지금은 선생님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안과 답답함이 가득할 것이다. 이럴 때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기도하며 생각하다가 아이들을 보고싶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 현수막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기로 결정하고 이어서 문구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글귀는 이러하다.
 
“사랑하는 영훈의 아이들아! 선생님들이 매일 기도하며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평안히 건강하게 잘 있다가 봐. 사랑해♥”
 
‘영훈고’라고 하지 않고, ‘영훈’의 아이들이라고 지칭한 것은 우리 학원내에 영훈초등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가 한 테두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영훈초중고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이 다 같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현수막을 가장 빠른 시간에 제작토록 했다. 현수막은 아이들에 대한 그리운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 잘 제작되었고, 학교 입구 정문 위에 예쁘게 게시하였다.
 
따뜻하고 좋아요
고등학교 한선생님께서 정문 위에 달아 올리는데, 학교 앞 낙원꽃집 권사님께서 보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너무 좋아요. 마음이 따뜻해져요.”
지나가는 주민이 보고 또 말씀하셨다.
“영훈학교는 이런 것도 다네요. 애들을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오왕, 마음이 따뜻해진당.”
그리고 하루가 지나도록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고백을 들었다. 더욱이 영훈초중학교에서도 너무 좋다는 이야기들이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계속되는 코로나19 상황을 잘 이겨내고 건강하고 반갑게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 선생님들과 한마음으로 기다리며 준비할 것이다.
오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 퇴근하는데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더라구요. 이 상황이 잠깐 슬프기도 했는데, 나가면서 교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고 위로가 되고 힘이 많이 났어요.”
 
사랑하는 영훈의 아이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마음을 담아 사랑과 격려의 파이팅을 전한다. 모두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