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제자 제자의 스승
작성자
최*하
작성일
20.07.05
조회수
1054

스승의 제자 제자의 스승
 
1. 스승의 제자
 
제자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2020년도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는 현재의 아이들, 그로 인해 얼굴을 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찾아오는 예전의 제자들이 있고, 또 전화나 문자 등의 방법으로 감사 인사를 하는 제자를 둔 현직 스승의 삶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고맙고 감사하다.
금년에는 며칠 전부터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스승이지만, 먼저 나의 스승이 계셨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제자다. 그러니까 내가 스승으로 있기 전에 제자로 먼저 있었다. 나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옳지 않을까.’
가끔씩 생각나는 은사님들께 안부 인사를 드리곤 했지만, 이런 마음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마음을 표현하고
그렇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없다.
태어나고 자라나는 순간순간에는 나에게 영향을 끼쳐주신 선생님이 계셨고, 여러 이름의 어른들이 계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잊으면 안 될 것은 나에게 영향을 주신 그 어른들에 대한 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나에게 잘해주는 분들만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어느 누구 한 분도 소중하지 않은 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영향을 주신 한 분 한 분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그 마음을 표현하기로 작정했다. 작은 엽서에 붓펜 글씨로 이렇게 썼다.
“선생님! 바르게 가르쳐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020년 스승의 날에. 제자 최관하 올림.”
그리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엽서 사진과 더불어, 한 분 한 분 은사님을 생각하며 모두 열다섯 분께 짧은 안부와 감사의 인사를 톡으로 전해드렸다.
 
은사님들의 회신
나를 가르친 은사님은 현재 90세 가까이 되신 분도 계셨다. 86세 되신 한 여자 은사님은 내 엽서를 받고 이런 회신을 주셨다.
“최관하 선생님은 늘 한결같이 좋은 선생님이군요. 훌륭해요. 그리고 부럽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3명의 아이들과 어머니 모시고 살기가 바빠서 솔직히 학교생활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어요. 퇴근길이 늘 바빴던 것이 아주 많이 후회 되었지요. 떠난 지 벌써 22년이나 되는군요. 금년에 마스크 살 가는데 고령이란 단어가 붙었어요. 카네이션 꽃이 나를 부끄럽게 하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끝까지 좋은 선생님이길 응원하며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회신을 주신 분도 계셨다.
“최선생, 고맙네. 누구보다도 영훈학원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하며 열정을 다 바치는 최선생을 위해 기도하겠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제자가 있어 늘 든든하네. 늘 고맙고 반가우이.”
 
유일한 메시지예요
은사님들의 회신을 읽던 중 마음을 울리는 글에 한 동안 시선이 고정되었다.
“수많은 제자 중에 유일하게 보내온 메시지에 감사하고 감동 받았다오. 최목사님도 늘 강건하기를 기원하오.”
이 회신을 주신 선생님은 현재 80대를 넘기신 분이시다. 항상 따뜻하고 인자하신 선생님으로 기억이 된다. 그동안 가르친 고등학교 제자들만 해도 가히 천 명은 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보내드린 것이 유일하게 제자에게서 온 메시지라니.
순간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연락을 자주 못 드린 것이 매우 죄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이렇게 연락을 드리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했다.
 
 
2. 제자의 스승
 
부산에서의 전화
교목실 내선으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차목사님이 받았다.
전해 들은 바로는 부산에서 온 전화였고, 내가 1995년도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라고 했다고 한다. 반추해보니 1995년도 1학년이면 여학생 학급이었고, 모교인 영훈고로 와서 첫 담임을 했을 때 만난 아이들이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여러모로 우수한 아이들이었다.
환경미화, 체육대회, 정기고사 등 모든 것에 1등을 하는 학급이었다. 그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는 최선을 다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교사 생활을 했었다. 참 많은 상담을 했고, 다양한 학급 활동, 학급체육대회, 우리 농산물 먹기의 날, 학급 MT, 매일 모둠일기를 쓰며 소통에 힘쓰기도 했다. 그때 아이들이 손으로 썼던 그 모둠일기 수십 권은 지금도 내가 보관하고 있다.
전화를 건 그 아이가 누구일지 무척 궁금했다. 더욱이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있는 아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전화의 주인공을 도저히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40살이 되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
“최관하 선생님 계세요?”
목소리를 들었지만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대답했다.
“네, 접니다.”
그때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저예요. 혜선이(가명). 95년도에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던~. 기억나세요?”
나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혜선이였구나. 내가 우리 반 회장님을 잊어버릴 수가 있나? 응?”
“네, 선생님. 목소리가 여전하시네요.”
그로부터 시작된 대화는 40분간 계속되었다.
“~~ 선생님, 저~ 그때 우리 학급 급훈을 잘 실천하고 있어요. ‘배워서 남주자’였잖아요.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의사하고 있어요. 남편도 의사구요. 아이도 둘예요.”
나이를 물어보니, 금년에 40살이 되었다고 한다. 17살의 여고생으로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아이였다. 그런데 40세의 중년이 되어 술술 남편과 자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것은, 제자 혜선이만이 아니라, 나 역시 세월의 흐름에 함께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혜선이는 그 당시 우리 학급 아이들의 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듬직하고 신뢰가 있으며, 매우 성실하게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아이, 아이들이 부러워하면서도 친근감 있게 대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혜선이는 그 아이 나름대로 고민을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그것은 모둠일기에 가끔씩 나타나곤 했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대화 중에 혜선이를 통해 들은 이 말은, 오전에 나의 은사님께 내가 표현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오전에는 내가 누군가의 제자가 되고, 오후에는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하루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보낼 수 있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학급 아이들의 근황도 살피며 이야기를 계속 하던 중, 자연스럽게 신앙의 얘기로 옮겨졌다.
“혜선이는 교회에 나가고 있니?”
“네, 그럼요. 선생님. 고등학교 때는 안 나갔었잖아요. 그런데 믿음 좋은 남편 만나서 저도 가고 있어요. 부산에 S교회예요.”
S교회는 부산에서 꽤 규모가 있고, 건강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떤 얘기보다도 감사하고 기뻤다.
“잘했다. 참 잘했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혜선이와 통화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혜선이는 내가 기도를 하는 중간 중간 “아멘, 아멘”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나는 ‘감사’와 ‘감동’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도’일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실행토록 인도하시는 하나님. 오랜만에 생각나게 하시고, 찾게하시고,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참 깊은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2020년 스승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