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생각나더라구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20.07.24
조회수
924

선생님이 생각나더라구요
 
집을 나갔대요
민이(가명)의 담임을 맡고 있는 L선생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민이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민이는 매우 착하고 말을 느긋하게 하는 제자다. 1학년 신입생 초부터 나를 잘 따랐고, 현재도 그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 개학이 늦어지니까, 수시로 나에게 카톡을 보내오곤 했었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학교에 가고 싶어요.”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민이는 문득문득 더욱 생각나는 아이였다.
나는 L선생님에게 물었다.
“민이가요?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금년에 처음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L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다.
‘중간고사를 봤는데, 작년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고, 그것을 못 참은 어머니가 매일 민이를 닦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이는 오늘 아침 학교에 오는 듯 했는데, 중간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온 아이라 다소 염려가 되었다. 나는 물었다.
“핸드폰으로 연락해 보셨어요?”
“네, 그런데 민이가 핸드폰을 안 가지고 그냥 뛰쳐나갔다네요.”
 
기도가 우선예요
평소에 말이 없고 생각이 많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아이보다 위험할 때가 많다. 민이의 소재가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큰 염려로 작용하고 특히 담임 선생님인 L선생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걱정이 될까 싶었다.
나는 L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민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르잖아요. 게다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민이의 소식을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구요.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실 테니까요. 혹시 위험한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해주시길 기도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차목사님과 L선생님, 셋이서 민이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사랑하는 제자 민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민이가 어머니와 말다툼 끝에 집을 나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오니, 민이를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시고 학교로 가정으로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도빨이 대단하세요
기도를 마치고 L선생님은 자기 교무실로 갔다. 그런데 나간 지 5분도 안 되어 L선생님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기도빨이 대단하세요. 민이가 전화를 해 왔어요. 집으로요. 어머니한테서 지금 연락이 왔어요. 민이가 학교로 지금 출발했다고 합니다. 돌아오고 있는거예요.”
상기된 표정으로 랩을 하는 것처럼 말하는 L선생님을 보며 저절로 하나님을 부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L선생님이 자신의 교무실로 돌아간 다음, 민이의 어머니께서 학교 전화로 연락이 왔다. 사실 민이와 그의 어머니는 작년 5월에 우리 학교에서 진행했던, 부모자녀 소통캠프에 참여했었다. 그래서 민이와 그의 어머니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민이의 어머니는 민이의 어눌린 말과 약삭빠르지 못한 성격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민이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가야잖아요
민이 어머니는 나와 통화를 하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민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제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질 않아요. 공부도 하지 않구요. 적어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은 가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집을 나가고~, 선생님. 방금 전화가 왔었는데, 가평에 가 있대요. 이 녀석이 무작정 기차를 탄 거예요. 내 말을 들어야 하는데~.”
민이 어머니의 독백같은 말을 들으면서 민이가 집을 나간 이유를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다. 민이는 매일 계속되는 대학의 중압감에 시달린 듯했다. 어머니의 말씀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그것을 이길 수 없어 아무 생각 없이 기차를 탄 것 같았다.
“선생님, 그래도 민이가 선생님을 잘 따르잖아요. 온라인 클래스 수업도 다른 것은 별로 보지도 않는데, 채플하는 것은 꼭 본단 말예요. 선생님, 우리 민이가 학교에 도착하면 상담 좀 해주세요~. 네?”
민이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길 원하는 마음과 아이가 무사하길 바라는 두 가지 마음을 나에게 전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요. 민이 어머니. 안 그래도 민이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려 했었어요. 너무 염려마세요. 제가 이야기 잘 나눌테니까요.”
나는 전화로 민이 어머니를 위로하고 기도했다. 한참을 기도하던 중 수화기 속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민이 어머니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평강, 그리고 근본적인 자녀의 사랑을 깨워주고 계셨다.
 
바람 쐬고 왔어요
“선생님~.”
나를 찾아온 민이는 다소 굳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민이의 얼굴을 대하니 잠시 염려했던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민이야. 갑갑해서 바람 쐬고 왔니?”
민이는 특유의 느릿한 말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그렇구나, 어디에 갔었니?”
“가평예요. 그냥 기차를 탔는데, 거기까지 갔어요. 아침에 엄마 말 듣고 나왔는데,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멍해서요. 가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그래, 엄마랑 통화는 했었니?”
“네, 엄마가 처음에는 막 모라고 야단치더니,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우셨어요. 저도 울었구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저도 미안하다고 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민이야. 그럴 때가 있는 거야. 그래도 이렇게 바람 쐬고 돌아왔으니까 된거지. 엄마한테 미안하다고도 했다면서~ 그럼 된거야. 앞으로 엄마랑 더 이야기 나누고, 열심히 생활하면 되는거야.”
“네, 선생님.”
 
공부할거예요
나와 민이의 대화는 약 30분간 계속되었다.
민이의 마음 상태와 학업과 진로, 꿈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민이는 열심히 하려고는 했는데, 성적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중간고사보다 더 떨어진 성적을 보고 민이의 어머니가 노여워하신 것이 며칠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사실 대학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도 못했구요. 하지만, 대학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엄마가 공부를 하기를 원하니까 하기는 할 거예요.”
민이는 스스로의 생각을 자신이 정리해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민이처럼 자기의 삶에 대해 진지하고, 가장 많이 걱정을 하고 있다. 어른들이 놀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주고, 부모의 생각과 달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고, 또 필요할 때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얼굴이 떠올랐어요
나는 민이를 붙잡고 기도했다. 앞길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잘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기도 후에도 민이는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굳어있던 얼굴에도 편안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민이는 말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가평에 가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계속 선생님 얼굴이 떠오르더라구요. 자꾸만요~. 그래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민이와 어머니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며칠 후에 들었다. 민이 또한 예전처럼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때마다 보호하여 주시고, 살펴주시고, 인도하여주시는 하나님께서 민이와 이 가정을 계속 지켜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