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기둥을 붙잡고 기도하라
작성자
최*하
작성일
20.12.12
조회수
879

학교 기둥을 붙잡고 기도하라
 
매일 구원을 위한 기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영훈고 전체 교직원의 사진 속 얼굴과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다. 그 어떤 사명보다도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 그 구성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교직원의 사진첩에는 기도할 때마다 펜으로 표시를 한다. 브이(V) 표시도 하고, 동그라미(O) 표시도 하고, 색깔 펜으로 표시도 한다. 점점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표시가 누적될 때마다 이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고, 분명 그분들께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시며 꼭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이분들 가운데, 기독교에 대해 다소 반감을 갖거나 불편해하는 분들의 사진을 바라볼 때는 성령님께서 한참 그 사진에 머물도록 하실 때가 있다. 그리고 더욱 기도하게 하실 때가 있다. 그것은 그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마음, 그 긍휼하심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목숨을 걸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대상, 그 영혼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것을 느낄 때마다, 그분들을 구원으로 응답하실 하나님의 은혜에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기도하는가 더욱 기도하라
믿음 생활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도에 익숙해진다. 기도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좋은 의미도 있지만, 형식적으로 드리는 기도가 될 수도 있다. 익숙이 나태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의 선지자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더욱 부르짖으라”고 하셨다.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크고 은밀한 일까지 보여주신다고 하셨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형식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 또한 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여러 상황이 어려울수록, 삶이 힘들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원하시는 것은 그 상황을 목상하지 말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라는 것이다.
영훈고가 비기독교 학교 시절알 때, 하나님께서는 십수 년간 간절하게 학원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영훈학원을 통째로 기독교학교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기도 제목대로 학교 안에 교회가 서게 하셨다.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기적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일 때 말이다.
하나님께서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욱 원하시는 것은 더욱 기도하라’는 것이다.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더욱 크고 비밀스런 일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영적 싸움 그리고 더욱 기도하라
영훈고, 아니 영훈학원이 오륜교회가 재단이 되며 기독교학교가 된 지 이제 5년이 되는 해다. 환경적으로 바뀐 부분들은 예전보다 무척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변화는 영혼의 변화이며 구원일 것이다. 그로 인해 영혼 구원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는 삶이 가장 귀한 삶일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여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할 일이다. 영적 싸움이 거세지는 것은 기도의 사람들이 기도를 쉬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가 강해질수록 사단도 극성을 부리고 최선의 발악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사단도 쉼을 갖고, 우리를 얕잡아 본다.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한다. 사단의 궤계를 능히 감당할 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겨낼 수 있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어야 한다.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듯이 사단도 사람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또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방해할 수도 있다. 믿었던 사람을 통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다. 이 상황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기도할 때 사단의 권세는 물러갈 것이다. 주님 아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 기둥을 붙잡고 기도하며
영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진행된 2020년 코로나의 해.
하나님께서 어느 날 기도하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운동장으로 나가라. 그리고 스탠드 중간 가장 중심에 있는 기둥 벽에 손을 얹고 이 학교 공동체에 포함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영훈고 건물 중간, 스탠드 중간에 있는 기둥 벽을 붙잡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결국 더욱 더욱 더 기도하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그 기둥을 붙잡으라는 음성도 들려주신 것이다.
나는 그 말씀에 순종했다. 사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기도하라고 하시니까 기도할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이상 그 기둥을 붙잡고 기도에 들어갔다.
차가운 벽기둥에 손을 댈 때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지속적으로 벽에 손을 얹는 기도는 처음 경험해보는 짜릿함이 있었다. 그 짜릿함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놀랍게 응답하실 것과,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람 속에서, 찬 공기 속에서, 비가 간간히 내리는 속에서, 좋은 날씨 속에서도 기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마다 눈물을 주셨다. 감동도 주셨다. 짧지만 굵은 기도였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다. 기도할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성령님께서 만지시고, 주님의 보혈에 힘입어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에는 그 당시의 제자들과 함께 국기게양대기도운동을 시작하게 하셨는데, 2020년 늦가을 지금은 학교 기둥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기대된다.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