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선생 영훈고 퇴임과 전국의 학교 사역
작성자
최*하
작성일
22.11.03
조회수
570

울보선생 영훈고 퇴임과 전국의 학교 사역

-사랑하면 기도하게 된다

 

국어교사로 시작

나는 1989년 전교조가 태동하던 그 해 대방동에 있는 장훈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었다. 참교육의 열기가 뜨겁던 그때, 나는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짜 교사가 되고 싶어 전교조에 가입했다. 기독교 신앙은 없었고, 술에 빠져 살던 27살이었다. 그리고 1992년 동료 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던 여선생님과 내 나이 30살에 결혼했다. 독실한 기독 신앙인인 아내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양다리로 5년여를 지난 후 30대 후반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1994년 모교인 영훈고의 부름을 받아 나는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계속했다. 사실 나는 영훈고를 1979년 고1 학생 때부터 다녔다. 글을 쓰는 문예기자부 활동도 열심이었다. 학교의 불만족스런 상황과는 달리 나는 영훈고를 사랑했다. 믿음이 바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 그러나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영훈고를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고, 동료 교사들을 사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었다.

 

기독교사로의 삶

루게릭병에 걸린 두 명의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학급에서 만나게 하시며 내 인생은 급변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3년간 거의 매일 기도하게 하시고, 결국 아이들 두 명의 병을 멈추어주셨다. 이 아이들을 통해 나는 울며 기도하는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울보선생’이 되었다.

이 때 <좋은교사>에서 출간된 책이 ‘울보선생’이다. 그리고 기독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기도하는 교사,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즉 학교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교사의 삶. 수업 전에 매일 교실에서 하는 기도, 아픈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기도, 병원에 입원한 교사,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기도, 성경공부, 예배, 기도모임, 찬양제, 고3기도회, 신우회, 학부모 기도회, 기독동문회, 영훈선교회 사역, 학교 앞 영훈센터 사역 등등 참 많은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하셨다. 기독교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결국 학교의 완전 복음화를 위해 15년간 집중적 기도를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영훈고뿐만 아니라, 영훈초, 국제중을 포함한 학원 전체를 기독교 학교로 바꾸어주셨다. 할렐루야!

 

교목으로의 삶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아니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으로 교목이 되었다. 비기독교학교에서 기독교사로 살며 야간신학대학원을 다니게 하신 하나님께서 학교의 복음화를 이루시고 나를 고등학교의 교목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서원한 대로 5년의 교목을 작년에 마치고, 다시 국어교사로 돌아오게 하셨다.

교목으로 섬기기시작할 때 당시의 이사장님께 말씀드렸던 것이 있다.

“저는 퇴직할 때는 목회자가 아니라, 교사로 하고 싶습니다. 교목은 3년에서 5년 정도만 하겠습니다. 제가 있을 때 훌륭한 교목님을 모셔 놓고 제가 그만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기도가 된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백한 대로 인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교목실에 나보다 몇 배나 더 훌륭한 교목 목사님을 2020년도에 보내주셨다. 그때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그리고 금년 2022년도에는 또 훌륭한 전도사님도 교목실에 보내주셨다.

나는 금년 초까지만 해도 내가 학교를 퇴임하는 것이 현실화 될 줄은 몰랐다. 정년까지는 3년 6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이 사랑스러웠고, 6년 만에 국어 수업을 하는 것이었지만, 나도 즐거웠고, 아이들도 무척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사명’이었다.

 

영훈고를 퇴임하고 <더작은재단>으로

정년 5년을 앞둔 지금으로부터 2년 전부터 나는 나의 향후 거취를 놓고 기도에 들어갔다. 좋은 동역자인 아내와 두 딸에게도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저 시간이 흘러 정년을 채우고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주어진 사명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영훈고는 이제 기독학교로서의 체제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나에게 영훈고 사역을 원하시는지, 아니면 또 다른 사명을 주실 것인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가 우선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응답을 주셨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말이다.

수년 전부터 관계해 온 <더작은재단>의 ‘스쿨처치임팩트’를 통해, 전국의 기도하는 학생들의 토반을 새롭게 만들고, 각 학교의 기도하는 학생들을 찾아,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사역자를 보내주며, 학생들을 기도의 핵심으로 일으키는 전국 기도 운동의 비전을 주셨다. 수십 년간 비기독학교인 영훈고에서, 그리고 기독학교에서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결국 전국의 학교와 기도하는 학생들을 품고 가라는 마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스쿨처치임팩트’의 대표로 섬기며 사역을 감당하도록 인도하고 계셨다. 이 사역은 ‘좋은교사’, ‘장신대’, ‘스탠드그라운드’ 등과 협력하여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더욱 협력하는 단체나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된다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면 개인도 공동체도 힘을 얻는다. 살아나는 축복이 있다. 그래서 또 기도한다.

나는 특별한 퇴임식이나 짧은 형식적인 인사보다도 기도의 자리에서 동역자들과 마음껏 기도하며, 다음 사역지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기독동문들 핵심들과 자리를 했고, 그 마음을 나눴다. 그리고 기독동문회 주관, 영훈선교회 후원으로 ‘영훈기독인대회’를 계획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행정적으로 내가 영훈고를 떠나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더작은 재단>에서 학교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그동안 영훈고에 올인했던 사역을, 이제 전국의 학교에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나의 남은 목숨을 다하려 한다.

다음세대와 이 땅의 학교를 위한 기도의 자리, ‘영훈기독인대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성령하나님의 마음으로 ‘눈물로, 무릎으로, 목숨걸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이렇게 기도하며 성장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된다.”

“눈물로 무릎으로 목숨걸고.”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는 삶은 언제나 ‘ing’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