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까지 찾아온 루게릭병 제자
작성자
최*하
작성일
22.11.03
조회수
604

북촌까지 찾아온 루게릭병 제자

 

기다리는 한 사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2022년 8월 31일자로 영훈고를 퇴임했다, 그리고 곧 바로 북촌에 있는 더작은재단의 <스쿨처치 임팩트> 학교 사역으로 섬기게 되었다.

수십 년간 함께 기도하던 동역자들에게 내 퇴임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역도 알릴 겸, 기도의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영훈기독인대회’다. 하나님께서는 기독인대회 3시간 이상을 크신 은혜로 축복하고 계셨다. 그 자리에는 150여 명이 참석하였다.

기독교사, 학부모, 동문, 제자들, 그리고 교회, 선교단체, 중보자 등의동역자들이 참여했다. 나는 무척 반가웠고, 또한 눈물겹게 감사했다. 코로나로 인해 막혀 있던 것 때문만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기독학교로 변화된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감사의 눈물과 부르짖는 기도 소리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 나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약 20여년 전, 나에게 예수님처럼 다가온, 양다리 신앙인이었던 나를 예수님께 의지하는 인생이 되도록 도구가 된 루게릭병 제자였다.

 

루게릭병 제자와 기독교사

그 당시 루게릭병에 걸린 제자는 두 명이었다.

1997년 1학년 남학생이었던 아이, 내가 담임이었던 석이는 무척 중증이었고, 고3을 못 넘긴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아이였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또 한 명의 루게릭병에 걸린 제자 아이가 우리 학급 옆 반에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욱이였다.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 영훈고에서 매일 한 번 이상씩 눈물로 기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자원해서 이 두 명의 아이들 담임교사를 맡았다.

기독교학교가 아닌 영훈고의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3년 동안 제자들을 위해 3년간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고, 그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수능을 마친 겨울 방학, 이 아이들의 병을 멈추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구원해주시고, 가족들을 구원해주셨다. 이것을 통해서 나를 기도하는 기독교사로 불러주셨다. 그렇게 20여 년을 기도하는 기독교사로 살게 하시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셨다.

 

욱이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

소강당에서 기독인대회가 시작될 무렵, 한 명의 루게릭병 제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욱이였다. 양복을 걸친 욱이는 이제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42살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19살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난다고 했는데, 40대 중년의 시기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이렇게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해, 욱이를 마주하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욱이를 깊게 끌어 안았다.

기독인대회가 3시에 시작되었는데, 온다고 했던 또 한 명의 루게릭병 제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시 30분이 지나갈 무렵, 혹시나 다른 자리에 있을까 확인하려고 석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학교에 도착한 거니?”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지난 후에 이렇게 답장이 왔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준비를 해서 나가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머니가 날짜를 착각하셔서 오늘 찾아뵙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날 따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참석하지 못해 죄송했어요

기독인대회를 마치고 석이와 통화를 했다.

석이는 이제 몸이 다소 약화되어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3일 기독인대회 때 선생님을 찾아뵈어야 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었는데, 어머니께서 그날을 잊으셨다는 것이다. 죄송해서 어떡하냐고 연거푸 말하는 석이에게 나는 괜찮다고 하며 다음에 만나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석이는 계속 연락을 해왔다. 어디든지 좋으니까 어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9월 8일, 목요일. 가을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이 무척 푸르렀다. 그 푸르른 갈빛이 대지를 지배하는 날 3시가 좀 넘어서, 석이는 내가 있는 북촌 <더작은재단>까지 찾아왔다. 도봉동,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에서부터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내가 있는 북촌까지 온 것이다.

석이의 옆에는 장애인을 돕는 한 분이 함께 있었다. 석이를 보니, 아예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인가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손가락도 이제 힘이 없다고 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지만, 언젠가부터 몸이 안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 모습을 보니 울컥하며 눈물이 솟구쳤다.

두세 곳의 카페를 지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1층에 있는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석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의 고등학생과 선생님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 벌써 퇴임이라뇨?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신데요. 저,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퇴직 소식을 들어서 건강이 안 좋으셔서 그러신가 했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냐, 석아. 우리처럼 하나님 믿는 사람은 사명 따라 사는 것이고 움직이는 거잖아.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기를 사명지로 옮겨주신거야. 학교 사역 하는 것도 동일하고. 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석이는 내 얼굴에서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예전보다 더 좋아지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지난 번에는 죄송했어요. 꼭 가서 뵈었어야 했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냐.왔어도 좋았겠지만, 너를 그 자리에 오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겠지? 아마 네가 이런 모습으로 그곳에 왔으면, 시선들이 다 너에게 고정되었을 것 같은데~. 넌, 괜찮았을까? 하하하.”

“네, 사실 저도~~, 그래서 갔었으면 일찍 가서 선생님만 보고 나올까 생각했었어요.”

 

하나님의 은혜란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 약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석이와 부모님, 여동생은 나를 통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신앙 생활이 힘들어졌고, 믿음도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석이의 아버지는 모범택시를 하고 계시고, 여동생은 결혼을 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구나~, 석아. 너는 요즘 믿음 생활은 어떠니?”

석이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저도 힘들어요. 선생님. 선생님과 있을 때는 하나님은 잘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왜 나는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지, 원망과 불평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번에 선생님 퇴임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옛날 학생 때 선생님께서 기도해주셨던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선생님도 빨리 만나뵙고 싶었구요.”

나는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럼~, 석아.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야. 네가 불편한 부분 당연히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아픔이 있고, 힘든 것이 있잖아. 종류와 내용은 좀 다르겠지만 말야. 사실 생각해 보렴. 네가 휠체어로 여기까지 온 것도 감사하잖아. 네가 정신이 멀쩡한 것도, 장애인 단체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감사한 것이 참 많지 않니?”

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활기를 찾고 있었다.

 

카페에서 기도하며

석이와 나는 그 때 아이들,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 석이의 은사님들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세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석아, 앞으로 남은 너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렴. 너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해달라고 기도하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 생활을 하는 게 가장 큰 축복인거야. 선생님도 이제 연락이 닿았으니까 자주 보고 연락 나누자. 선생님도 네가 믿음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야. 알겠니?”

“네, 선생님.”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아. 오늘 여기까지 와 주어 참 고맙다. 내가 퇴임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제자는 네가 처음이야, 북촌잊지 말고, 응? 오늘 영원히 기억될 것 같은 날이야. 그렇지?”

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석이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내 석이의 어깨에 한 손을, 그리고 한 손은 석이의 손을 붙들고 기도를 시작했다.

“살아계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석이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20여년 전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석이의 육신에 있는 병을 놓고 기도하게 하시며, 기도 가운데 석이를 구원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병을 멈추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다소 육체적으로 연약한 부분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석이의 믿음을 회복시켜주시고자 하는 뜻임을 믿습니다. 저의 퇴임 시기에 석이와 만남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 받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석이를 마음껏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여주시옵소서. 단단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바라옵기는 다리에 힘을 주시고, 손가락에 힘을 주시고, 연약한 부분에 힘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또 한 번 간증하며 살아가게 축복하여주시옵소서~~.”

기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사람들이 꽉 차 있는 카페에 기도의 소리는 잔잔한 음악보다 더깊은 감동으로 자리하는 듯했다. 이미 석이와 내 눈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감사의 눈물로 가득했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나보다 더 덩치가 큰 석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석이를 주관하실 하나님

카페를 나오니, 하늘은 더욱 푸르고 높아보였다. 석이는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석이는 지하철로 이동하기 전에 선물을 준비해 왔다.

“선생님, 제가 준비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나는 선물을 받고,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석이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에도 몇 번씩 내가 있는 곳으로 휠체어를 돌렸다. 그리고 힘없는 손을 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힘겨운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석이. 그 모습을 보는 내 눈에서는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여기까지 석이를 인도하신 하나님. 석이의 삶을 주관하여주십시오. 앞으로의 삶도 책임져 주시옵소서~. ”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석이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욱이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들의 남은 인생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삶이 되길, 하나님께서 주관해주시길 소망하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 땅에 살아 가는 동안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사명자’로 사용하시길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