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이야기] 중1 딸을 데리고 온 중1 때 제자
작성자
최*하
작성일
24.03.21
조회수
31

중1 딸을 데리고 온 중1 때 제자

 

대구의 세미나에 초청을 받아 강사로 갔다.

세미나가 시작되기 약 10분 전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교회의 통로를 지나던 중이었다. 웬 중년의 남성과 마주쳤는데,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선생님, 맞으시죠?”

나는 그 남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금방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남성의 옆에는 아내인듯한 자매도 같이 있었다,

“선생님. 저 생각나시겠어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담임이셨어요. 저는 원기라고~”

나는 순간 외쳤다.

“아~ 원기. 알지? 내가 담임했었던, 그 J중학교 1학년 때말야.”

나는 또렷이 그때가 떠올랐다.

 

나는 1989년부터 서울의 J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같은 재단의 J중학교라는 남중으로 이동했다. 그 이유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시작할 때부터 나는 전교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전교조 창립 때부터 함께 한 이유는, 지금처럼 정치색도 없었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자 했던 순수함의 ‘참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학교 관리자들은 전교조 교사들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측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학교로 발령을 냈고, 나는 그것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위복이었을까? 나는 중학교로 온 후 입시 부담이 없는 중학교에서 남학생들과 내가 하고 싶은 학급운영과 수업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학급에서 활동한 것은 모둠일기 쓰기, 생일잔치, 학급 체육대회, 연극 관람, 학급 마무리 잔치, 학급 문집 발간 등이었다. 그리고 급훈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고, 반가를 불러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J중학교에서의 생활이 두 해째 되던 1993년도에 나는 원기의 담임을 하게 된 것이다. 원기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선생님, 잊혀지지 않는 분이셨어요. 저희를 위해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셔서요. 그때 일기를 쓰고, 학급문집을 만들고, 또 연극도 보고, 여러 곳을 다녔던 기억도 다 나요. 그런데 이번에 대구에 강의를 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목사님이 되신 것도 놀랐구요. 그래서 이렇게 봬러 온거예요.”

내 가슴이 기억의 편린을 머금고 울컥했다.

“그랬구나, 사실 내가 그 때 원기, 너희 제자들을 생각하면 미안해. 그때 교회는 다녔지만 나~, 양다리 신앙인이었잖아. 교회도 나가고 술도 엄청 먹고~ 하하, 너희들 위해서 한 번도 기도를 해주지 못했던~~, 미안하다!”

웃으며 말하는 나에게 원기가 이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을요. 선생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 그리고 이거 보세요.”

 

원기가 가지고 온 것을 보니, 그것은 1993년도에 만든 우리 반 학급문집이었다.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 번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보관하고 있고, 가끔씩 읽어본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31년이나 흘렀지만, 그때 원기와 아이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온 아이들, 그 어린 남자 아이가 이렇게 늠름한 어른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는 것에 참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원기는 대구에서 경찰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기독교 신앙이 없었는데, 믿음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아들, 딸을 두고 있다고 했다.

“제 딸이 이번에 중학교 1학년이 되었어요. 딸이 중학교 1학년인데,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이렇게 뵙네요.”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원기와 가족을 위해 그 자리에서 기도했다. 믿음의 계보가 이어져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하며 기도했다.

 

세미나를 다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니, 원기에게서 아래와 같은 문자가 와 있었다.

 

“선생님 원깁니다 서울은 조심히 잘 가셨는지요? 31년 만에 한달음에 달려가 선생님 뵈어서 무척 반가웠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학창 시절 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셔서, 늘 생각나고 뵙고 싶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선생님 같은 존경스러운 분을 만나. 기억나는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합니다. 세미나 때 귀한 말씀 잘 들었고 늘 기도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라는 말이 떠오르는 따스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