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갓 22삶과 죽음(요약)
작성자
김*영
작성일
07.12.29
조회수
2367

러빙갓 22삶과 죽음(요약)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전문은 너무 길어서 최대한으로 요약해서 보냅니다. 선교회 신우회자료에 한글 첨부 파일 붙여 놓을 것이니 인쇄해서 읽으세요. '러빙갓' 책 꼭 사서 읽어 보세요.

러빙갓 찰스콜슨지음 22. 삶과 죽음 (요약)

내가 머티 하웰에 대해들은 것은 뉴햄프셔 교도소에 있는 한 수감자로부터였는데, 그는 교도소 선교회 본부에 있던 우리에게 머티 하웰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동참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방명록에 서명한 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웰 여사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녀의 성실한 사역에 대해 감사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내가 첫마디도 끝나기 전에 그녀는 손을 흔들며 다시 활짝 웃음을 짓고는 항의하듯 말을 막았다.

“오, 아니에요. 댁이 저를 도와주었죠. 최근 몇 년간은 제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콜슨 씨, 제가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의 예수님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에는 깊은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머티 할머니는 1890년에 텍사스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조지아 주 콜럼버스로 이사 왔다. 열 살 때 하루 10센트를 받고 방앗간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열일곱에 결혼하여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 후 연년생으로 둘을 더 낳았다. 둘째로 난 아들은 두 살 때 죽었다. 사실 그녀의 근친들의 연속적 죽음은 신앙에 큰 시련을 주었다. 1939년 12월 중순에 머티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 후인 1월 중순에 머티의 남편이 사고로 숨졌다. 그로부터 두 주 후에는 시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그때 일을 회상하며 머티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남편의 죽음으로 머티는 집마저 잃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처음에 그녀는 방앗간 일을, 다음에는 두 해 동안 옷가게도 해보고 작은 카페도 운영했습니다. 아이들한테 얹혀살거나 그런 비슷한 것은 딱 질색이거든요.”

그래서 머티는 늙고 건강이 나빠져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낡고 누추한 집’에 들어앉을 때까지 일을 했다.

어린 아들의 죽음과 큰아들의 건강 악화 그리고 자신이 양로원에 오게 된 것이 그녀를 영적 침체로 몰아넣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그녀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그녀는 어느 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저를 데려가시겠다면 저는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내가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어요. 그러나 그 때 주님이 내게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죄수들에게 편지를 써라.’ 단 세 마디였어요. 상상해 보세요. 저는 죽고 싶어서 이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은 ‘좋다. 머티 너는 죄수들에게 편지를 써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치 내 앞에 서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분명하게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처음에 난 두려웠죠.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주님, 제가 죄수들에게 편지를 쓰라고요? 저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읽고 쓰는 법도 독학으로 배웠잖아요. 그리고 저는 감옥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그러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요. 내가 만일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분의 손에서 벗어났겠지요. 나는 순종해야만 했어요.”

당시 머티 할머니가 교도소선교회나 다른 교도소 사역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말에 나는 그녀의 소명이 기적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그런 사역을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했으며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계획에 따라 행동으로 옮겼다. 그녀는 애틀랜타에 교도소로 편지를 썼다. 그녀가 쓴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사랑하는 수감자에게

나는 원치 않은 곳에 있게 된 당신을 사랑하며 관심을 갖고 있는 한 할머니랍니다. 나의 사랑과 연민을 당신께 보냅니다. 나는 당신과 편지로 친구가 되고 싶어요. 내 편지를 받고 싶으면 답장을 써 주세요. 당신의 편지 하나하나에 답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 친구 하웰 할머니가

편지는 교목에게 전달되었고, 머티 할머니는 여덟 명의 수감자 명단과 함께 그들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녀의 전략은 단순하다.

“편지를 받으면 읽고, 담장을 쓸 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아시죠? 이제 저를 통해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이 써주시는 편지들은 때로 아주 놀라운 것들입니다!” “성령님이 일하십니다. 나는 순종할 뿐이지요. 자아나 육적인 감정을 조금도 가미시키지 않아요. 성령님이 말씀을 주시면 난 그것을 쓸 뿐이지요. 그러나 진짜 축복은 사람들의 답장에 있어요.”

“이것들을 보세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편지 한 다발을 건네주었다. 대충 훑어보았으나 그 구절구절들이 내 가슴에 닿았다.

사랑하는 할머니…….

저는 돌봐주거나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주님과 할머니가……. 저는 지금 감방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거죠, 할머니?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 걸까요?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밖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쁩니다. 지금부터 남은 생애 동안 매일 밤 기도할 때 저도 할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답장해 주세요. 사랑해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데이빗

또 한 편지에는 ‘손녀딸 제니스’라고 이름이 적혀 있다.

사랑하는 할머니,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어요.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쓰신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조금 기다렸다가 할머니를 찾아가서 뵙고 할머니가 제게 어떤 존재인지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음을 바꿨습니다. 지금 말씀드릴래요.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지금껏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을 할머니에게서 받았어요. 이제 제 삶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할머니는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어요.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할머니 덕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할머니를 저의 소중한 할머니로 사랑하고 있어요.

나는 편지 다발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머티, 하나님이 복 주시길…….”

“오,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큰 복을 주셨어요, 콜슨 씨. 수감자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저는 생애 최고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내 인생을 주님께 바치고 난 후에 주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셔 왔어요. 내가 미처 생각도 하기 전에 만사가 척척 해결된답니다.”

머티 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요즘 시간이 더 빨리 그리고 훨씬 즐겁게 흘러간다고 말했다.

우리의 작별 시간이 가까워지자 머티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몇 마디 조언을 해 줬다.

“콜슨 씨, 주님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만 늘 기억하세요. 가금 사탄은 내게 나는 너무 늙었다, 기억력도 안 좋다고 속삭이면서 그것에 동의하도록 강요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사탄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당신은 사탄이 우리를 사면에서 우겨 싸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만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 그러고는 재빨리 나를 향해 충고의 동작을 해 보이며 덧붙였다. “당신도 역시 포기하면 안 돼요.”

이 말과 함께 머티 하웰 여사는 최고로 풍성한 삶을 만끽하는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기쁨이 넘치는 멋진 미소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나는 현관문께로 나가면서 다시 한 번 응접실 쪽을 돌아다보았다. 그곳 광경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나는 갑자기 내 앞에 펼쳐진 슬픈 장면, 침체와 절망, 공허의 무덤 같은 침울함에 당황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즐거움이라곤 엿볼 수가 없었다. 대신 그들의 쑥 들어간 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현하는 듯 했다. 자신들을 거기에 버려둔 가족들에 대한 분노, 자신들에게 가혹한 타격을 가한 운명에 대한 분노, 자기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못 보게 방해당한 것에 대한 분노, 누군가 먼저 죽어서 실려 나가는 장면을 한숨지으며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오래 살지 않는다면 자신보다 나을 것도 없는 사람이 남아서 자신의 육신이 현관문으로 실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에 대한 분노…….

내 마음은 그 애처로운 모습들, 절대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잔인한 속임수에 불과한 목숨의 부지에 안간힘을 썼으나 70, 80, 90년의 기쁨과 패배와 고통과 즐거움의 날들이 끝나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어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들에 아픔을 느꼈다.

기다림, 무의미한 생존의 끝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리고 그 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면 이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혹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편 위층의 머티 하웰은 91세의 노안에 기쁨과 승리에 찬 웃음을 짓고 앉아 있다. 살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다. 지금쯤 그녀는 다시 책상에 앉아 수감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티 하웰도 이 세상이 지옥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외로움, 고통, 사랑 받지 못함, 집과 가족을 잃는 상실, 살기 위해 해야 했던 단조로운 고역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머티가 하나님 없는 삶의 공허함과 무목적성,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의 무의미함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그녀는 우리가 왜 태어났나? 왜 사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지옥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고 그녀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한 지옥으로부터 인간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기를 구했다. 그렇다 머티는 오래 전에 인생의 핵심적인 역설을 배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하던 내게 마지막 연결 고리를 제공해 주셨다. 바로 머티 하웰이었다.

그것은 믿는 것이며, 회개하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이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며, 상처 입은 자들을 싸매 주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었다. 머티 하웰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