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까마귀
작성자
김*영
작성일
09.09.11
조회수
1703

그 청년 바보 의사 중에서



그해 여름이 끝날 즈음, 내 수중에는 수련회에서 선배들이 선물해준 십여 권의 책들이 있었다. 내 독서생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만화책이 주류를 이루긴 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성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할 때도 참고 서적을 한두 권 스스로 훑어보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예과 2학년 초쯤에 터득했다. 내가 속했던 성경공부 팀인 ‘스티그마’에서도 여러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나의 독서는 더욱 탄력이 붙었다.

책읽기의 첫 테이프를 선배들의 애정 어린 선물로 시작하게 된 나는 자연히 책에 빚진 자가 되었다.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나는 책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책을 ‘맞춤선물’하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을 알아야 했다. 그저 베스트셀러니까 주는 건 예후가 영 좋지 않았다.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확 땅기는 때’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책을 볼 때 누군가가 떠오를 때가 있다. 또는 어떤 이를 만나다가 그에게 꼭 필요한 것 같은 책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때도 있다. 이럴 때는 한 박자 늦추면서 이 강력한 느낌이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일단 확신이 서면 책이 비싸든 말든, 그로 인해 내 일주일 생활이 궁핍의 극치를 달린다 해도 상관치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 흘러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게 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서점에 가면 40%는 내 책을 사고 60%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줄 책을 구입한다. 일 년 동안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는 책의 분량도 이제는 3백 권에 다다른다. 내 주머니는 늘 가볍다. 아마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로부터 엄청난 구조조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책에서 만났던 한 줄의 문장이 나의 내면을 온통 뒤흔들어 깨웠던 순간을 생각하면, 또 내가 전달했던 작은 책 한권이 잠자고 있던 누군가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다는 그 값진 고백이 내 영혼에 돌려준 축복을 생각하면, 적자 계산서에 잠시 고민하던 내 머릿속엔 한 문장만 또렷해진다.

‘그래, 이건 적자가 아니야. 남는 장사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에서 삶을 사는 동안, 영적으로 주리고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들을 책으로, 삶으로 전하면서 살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