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가치
작성자
김*영
작성일
11.06.17
조회수
1595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 이동원목사지음

 

p208 영원한 가치

 

1996년부터 2006년까지의 노인 인구가 전국적으로 46%가 증가하는 동안 61세 이상의 노인 범죄는 무려 139%가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자연 연령이 정신 연령의 성숙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통계적 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연륜이 더해지고 교회에서 보낸 세월이 많아지다 보면 우리는 교회 직분도 받게 되어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교회의 직분의 타이틀이 우리의 영적 성숙의 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과 상관없이 여전히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들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영적성숙과 영적 미숙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의 하나가 바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한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신앙적 가치관을 얼마나 내면화하고 사느냐,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성경적 가치관을 붙들고 살고자 하는 모습이 과연 우리에게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비성경적 가치관의 핵심은 한마디로 세속성이요 순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떤 분이 교회 생활을 오래 했어도 그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순간적인 가치에 붙들려 살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인 것입니다.

 

세속적가치 지향의 인생이란 본문 사도요한의 가르침에 의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자랑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충동에 기초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식욕, 성욕, 물욕, 명예욕, 권세욕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이런 것들이 인생의 생존의 욕구가 아니냐고 항변할 수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욕구 그 지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욕구가 남용되고 과용될 때 그것이 바로 성경이 경계하는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기 위해 먹는것과 먹기 위해 사는 데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살기 위해 먹는다면 그것은 나무랄 것 없는 생존의 욕구지만, 먹기 위해 사는 순간(먹는 것이 생존의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육신의 정욕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이런 세속적 가치의 욕망에 빠지는 순간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그리고 이런 욕망의 출처는 결코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속적 가치 지향의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 선택의 몫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어느 날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을 향한 내비게이션! 그것은 영원한 가치를 우리의 진정한 가치로 품는 순간 시작되는 여행입니다.




 

 

(저의 의견)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목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보면 그것이 자신의 욕망을 우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을 선택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지나치기가 쉬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의 일을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시작했어도 어느새 자기 욕심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씀 묵상으로, 기도로 자신을 살피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잘못된 것을 깨우쳐 주실 때에는 지체말고 돌이켜야 합니다.